"죽음뿐 아니라, 피해자가 성폭력에 맞서 싸운 용기도 기억하자"

이주빈 2022. 9. 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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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에는 검은 옷을 입은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보복도 스토킹도 여성동료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인식이 바탕에 있기에 발생한 범죄다. 여성혐오의 맥락과 성차별의 사회구조를 떼어놓고 이번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을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현실조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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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집회
100여명 시민 모여 "성차별·여혐에 기인한 사건"
"여혐 범죄 아니다"는 김현숙 장관 비판 거세
17일 오후 5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추모제’가 열린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참가자가 쓴 손팻말이 놓여있다. 이주빈 기자

1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에는 검은 옷을 입은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지난 14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추모하고 ‘더는 여성을 죽이지 마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이번 추모제는 불꽃페미액션·지구지역네트워크·진보당 인권위원회·페미니즘당창당모임·페미당당 등이 주최했다. 참가자는 여성 청년이 가장 많았고, 중장년 남성과 외국인도 보였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국화 한 송이를 옆에 둔 채 각자 메시지를 쓴 손팻말을 들었다.

‘과연 그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만나주지 않는다고 죽임을 당했을까?’
‘경찰·법원·서울교통공사 모두 공범이다’
‘강남역 사건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스톱 페미사이드(STOP FEMICIDE·여성 살해를 멈추라)’
‘법대로 했더니 죽었다, 여성혐오 범죄 강력히 처벌하라’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더는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참가자들의 손팻말 문구들

참가자들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고 명확하게 호명했다. 불꽃페미액션은 “일터에서 불법촬영과 스토킹 범죄에 노출되던 여성 노동자가 업무 중 살해당한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고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구조적인 문제인가”라고 지적했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는 “고인은 여성이기에, 스토킹을 당했고 불법촬영 동영상 유포 협박을 당했으며, 피해를 알리고 재판과정이었음에도 여성에 대한 범죄이기에 적극 대응하지 않은 검찰과 경찰에 의해 방기된 채 살해됐다”고 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보복도 스토킹도 여성동료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인식이 바탕에 있기에 발생한 범죄다. 여성혐오의 맥락과 성차별의 사회구조를 떼어놓고 이번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을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현실조작”이라고 말했다.

1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에서 열린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추모제’에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주빈 기자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혜원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수없이 많은 여성이 흡사한 범죄를 수십 년간 겪은 데이터가 명백한 여성 대상 범죄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데도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한다”며 “(피해자 대신) 여성 적대적 정부가 죽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숙 활동가는 “문제의 본질을 여성혐오로 보지 못하는 대통령과 김현숙 여가부 장관 등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가”라고 했다.

17일 시민들의 추모제가 열린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에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가 붙어 있다. 이주빈 기자

수사·사법기관과 서울교통공사를 향한 비판도 이어졌다. 지수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피해자가 처음 신고했을 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두 번째로 신고했을 때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은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신변보호조치를 중단하고, 피해자에게 범죄 대응의 책임을 떠넘겼다”며 “법무부는 (이제) 법을 개정하겠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경 대표는 “서울교통공사는 (가해자) 직위만 해제했을 뿐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일터에서조차 여성은 여성에 대한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며 “비슷한 처지의 여성 피해자들에게 어떤 불안으로 작동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1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에서 열린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

피해자의 용기를 기억하자는 발언도 나왔다. 명숙 활동가는 “피해자는 용기 내 불법촬영과 스토킹에 대해 고소하며 싸웠다”며 “그녀가 무참하게 죽어간 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녀가 생전에 성폭력에 맞서 싸운 용기도 기억하자”고 말했다. 예원 페미당당 활동가는 “옆에 서서 같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제가 있는 자리만큼은 안전한 자리로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묵념으로 시작해 성명 낭독과 자유 발언으로 이어진 이번 추모제는 참석자들이 신당역 앞에 헌화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우리는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그 여자가 죽지 않을 수 있었을지. 어떻게 해야 직장 동료로부터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을지. 스토킹과 불법촬영을 겪지 않고, 성범죄 신고를 해도 보복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백래시공동대책위원회 해일

글·사진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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