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후보 신세' 포뮬러E 챔피언.. 그는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F1서는 후보 드라이버에 그쳐
주전 이탈에 갑작스레 데뷔, 포인트 획득
내년 정규 드라이버 가능성 높여
지난 11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 대회 포뮬러1(F1) 16라운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우승자 맥스 베르스타펜(24·네덜란드)만큼이나 화제가 된 선수가 있다. 20명 중 9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승점 2점을 얻은 닉 데 브리스(27·네덜란드)가 그 주인공이다. 1~3위 상위권도 아닌 중간 성적을 낸 선수에게 이목이 쏠린 이유는 무엇일까.
데 브리스는 F1의 하위 대회인 F2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던 선수였다. 2019년 F2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같은 시기 F2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이미 F1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반면, 데 브리스에게는 F1 참가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내구성 경주 대회, 인디카 시리즈, 포뮬러E(전기차 경주 대회) 등 다른 대회를 전전해야 했다.
데 브리스는 2020년 포뮬러E에서도 정상에 우뚝 섰다. 다시 한 번 F1에서의 기회를 노렸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후보 선수 자리가 고작이었다. 메르세데스·윌리엄스·애스턴 마틴의 차를 타고 연습 주행에만 참가했다.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선 윌리엄스의 메인 드라이버 알렉스 알본이 건강 문제로 레이스 참가가 어려워지자 그의 자리를 대신해 참가하게 됐다. 연습 주행에선 애스턴 마틴의 차를 타고 예선과 본 레이스에선 윌리엄스 소속으로 참가한 이색적인 기록도 남겼다.
오랜 세월 갈망하던 F1 데뷔전에서 데 브리스는 당당하게 포인트를 따냈다. 예선을 8위로 통과한 그는 본 레이스에서 10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9위를 했다. ‘꼴지팀’ 윌리엄스에겐 의미가 있는 성적이었다. 현재 F1은 1년간 22번의 경주를 펼쳐 각 레이스에서 1위부터 10위까지 포인트를 차등 지급해 시즌이 끝났을 때 합산 점수로 선수 개인 순위와 팀 순위를 매기는데, 이 순위에 따라 각 팀은 상금과 광고 수익 등을 벌어들여 차량 개발 비용 등으로 사용한다.
최근의 F1에서는 레드불·페라리·메르세데스 등 풍부한 예산으로 높은 차량 성능을 유지하는 팀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하위권 팀들은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윌리엄스와 같은 하위권 팀들에겐 1점도 소중한 것이다. 실제로 윌리엄스의 다른 드라이버 니콜라스 라티피는 이번 시즌 16번 경주에서 1점도 따내지 못하고 있다. 윌리엄스 팀은 데 브리스의 이번 포인트까지 포함 총 6점에 불과하다. 윌리엄스가 2020년 꼴찌를 차지했을 땐 시즌 전체 승점이 0점이었고, 작년 꼴찌 하스도 1점도 따지 못했다.
그런 팀에게 데 브리스는 승점 2점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데 브리스는 경주가 끝난 후 팀 무전으로 “어깨가 죽은 것 같다. 들어올리지도 못하겠다. 누가 와서 나를 좀 꺼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데 브리스는 데뷔전 활약에도 불구하고 다시 후보 드라이버 신세로 돌아가야 한다. 자리의 원래 주인인 알본이 건강을 회복하고 다음 달 2일 열리는 싱가포르 그랑프리에 복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 브리스가 다음 시즌엔 F1에서 ‘정규’ 드라이버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포츠 매체들은 데 브리스가 포인트 경쟁이 심한 중하위권 팀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데 브리스는 이탈리아 그랑프리가 끝나고 “내 두 손으로 내가 직접 기회를 잡은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F2와 포뮬러E를 제패하고도 후보에 머물다 갑작스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데뷔전서 포인트를 따낸 데 브리스. 그가 다음 시즌엔 F1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올 시즌 남은 기간 그의 경주를 다시 볼 기회가 있을지 F1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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