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환율 10% 상승 때마다 무역적자 3.6% 늘어난다
자동차부품·2차전지·건설광산기계·농기계 등 투자 유망
(시사저널=이석 기자)
원-달러 환율 1300원 돌파는 그동안 경제위기의 전조 현상으로 인식돼 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1년 닷컴버블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환율이 1300원을 돌파했다. 최근 몇 개월간 '슈퍼 달러(강달러)'가 지속된 데 따른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원-달러 환율은 6월23일 1300원을 돌파한 지 3개월도 안 돼 90원이나 올랐다. 지난해 평균(1145원)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22%에 이른다.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라 원화 가치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달러=1400원'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달러 인상 시기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금리 인상 시기에는 달러가 약세를 보였다. 환율이 하락했다는 얘기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경제 상황으로는 달러 가치가 강세로 진행될 수 없다"면서 "달러 인덱스를 구성하는 통화 중 전쟁 리스크가 반영된 유로화의 약세가 반영된 결과로 본다"고 분석했다.
환율 1400원 시대 투자 전략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요국의 원자재 수출규제,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정책 등으로 원자재 가격마저 급등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국제 원자재 가격과 원화 환율의 변동요인 및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철광석 등 금속 가격은 하락한 반면,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은 상승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이 가장 많이 상승한 것은 석탄으로 전년 대비 상승률이 207.4%(7월12일 기준)에 이른다. 뒤를 이어 천연가스(74.1%), 원유(47.6%), 밀(18.9%) 순이었다.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의 부담 역시 가중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자재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된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들의 실제 수입가격도 함께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은 기업들의 생산비용도 증가시켰다. 원자재 가격 및 환율 변동으로 기업의 생산비용은 전년 대비 8.8% 상승했다. 업종별로 제조업의 비중이 11.4%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하락을 우려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했다. 강내영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생산비용 증가분을 가격에 전가한 기업은 5% 미만으로 조사됐다"면서 "생산비용 증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할 경우 영업이익이 감소해 채산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율이 상승해도 실질적으로 국내 수출기업이 얻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이 상승하면 포스코와 CJ제일제당, SK이노베이션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익률이 낮아진다. 반대로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현대·기아차 등 수출기업은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연구원이 수출단가 함수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각각 10% 상승할 경우 수출금액은 0.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수입단가 상승으로 수입금액은 3.6%나 증가했다. 그만큼 무역적자가 가중된다는 얘기다.
'고환율=수출 경쟁력 강화'는 옛말
한국 경제는 최근 사상 유례없는 무역적자에 신음하고 있다. 8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6% 늘어난 566억7000만 달러, 수입은 28.2% 늘어난 661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따른 무역적자는 94억7000만 달러로, 1956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1〜8월 누적 무역적자 역시 247억2300만 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다. 경상수지 흑자를 어필했던 추경호 부총리조차 무역수지 악화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 폭 감소에 대한 우려를 표시할 정도다.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원자재 수입업체뿐 아니라 수출업체의 마진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투자 포트폴리오 역시 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FX(외환) 상승으로 수혜를 볼 수 있는 기업들을 추천주로 꼽았다. 미국 수출 비중이 커 원-달러 환율 상승효과를 볼 수 있는 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8월 수출입지표를 보면 전체 수출 증가율은 6.6%로 둔화됐다. 대중국 수출은 -5.4%의 역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대미 수출은 13.7%나 증가했다.
대표적인 미국 수출주로는 자동차부품과 2차전지, 철강관 및 철강선, 건설광산기계, 농기계 등이 꼽힌다. 특히 세아제강 등 강관업계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수출이 전체의 70%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올해 1~8월 강관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8%나 증가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원화 매출 증가 효과까지 노릴 수 있는 만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윤정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수출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중국 비중이 10% 이하인 업종을 찾는 게 핵심이다"면서 "이들 섹터는 원-달러 환율 상승효과를 보면서 중국 수출 둔화를 피해갈 수 있는 업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달러 강세 기조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통상적으로 원화 가치가 커질 경우 수출 경쟁력이 감소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화 강세 구간에서 오히려 수출이 증가했다. 달러 약세 구간에서 글로벌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고환율에 따른 수출 경쟁력 강화는 이제 옛말이 됐다. 한국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인 일본 엔화가 지나치게 낮은 만큼 환율 상승이 수출 경쟁력 확대로 이어질지 불분명하다"면서 "글로벌 무역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만의 수출 증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中 수출 둔화 피하는 업종을 주목해야
반대로 원자재 기업들의 리스크도 많이 약화됐다.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환율 상승에 따른 대표적인 피해 업종이었다. 하지만 위험 관리나 파생거래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였다. 이 회사가 8월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한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연결 실체(SK이노베이션 및 자회사)는 미국 달러와 유로, 엔 등 외화금융자산은 2367억1250만 달러에서 3938억8999만 달러로, 부채는 4071억5329만 달러에서 6045억5747만 달러로 6개월 만에 각각 66.4%와 48.5% 증가했다. 하지만 환율이 5% 상승할 때마다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의 감소 폭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와 관련해 회사 측은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한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정부의 대응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강내영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무역수지 적자와 경제성장률 둔화는 올 하반기 중 대외 여건 개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정책적 대응 역시 환율보다 물가 안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의 물가 파급효과가 가장 큰 만큼 원유나 천연가스 등으로 유발된 물가 상승의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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