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자 곁에서 울어주지 못하는 게 가난

한겨레 2022. 9. 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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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새벽마다 마을 둘레길을 걷는다.

주로 소나무를 키우는 농원이었는데, 하늘로 뻗은 어린 가지들이 자연스럽지 않고 무슨 조각품처럼 모양이 비슷했다.

박제된 새도 살아 있는 새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고통은 물론 이웃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허식(虛飾)의 상징이 아닌가.

하지만 생명을 오로지 자본을 축적하는 도구로만 여기는 탐욕스러운 사람은 소나무들이 내지르는 고통의 외마디를 듣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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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고진하목사의 불편당 일기]

픽사베이

나는 매일 새벽마다 마을 둘레길을 걷는다. 오늘 새벽에도 길을 나섰는데, 늘 걷는 길 말고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이웃한 사제리라는 마을 길로 접어들었다. 한참 동안 농로를 따라 걷다가 한우 수십마리를 키우는 우사를 지나 다리를 건너자 수백그루 나무들이 심어진 농원이 나타났다. 반가웠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분재 농원이었다. 주로 소나무를 키우는 농원이었는데, 하늘로 뻗은 어린 가지들이 자연스럽지 않고 무슨 조각품처럼 모양이 비슷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린 가지들마다 굵은 철사가 챙챙 감겨 있었다.

철사가 감겨 있는 걸 못 보았다면 멋진 소나무들을 보고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탄성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아이들 손가락 굵기의 어린 가지에 휘감긴 굵은 철사를 본 순간, 내 마음 귀에는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아파, 아파요, 하고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아무리 돈벌이도 좋지만, 굵은 철사를 휘감아 살아 꿈틀대는 생명의 모가지를 비틀다니. 대체 농장주는 어떤 사람이기에 생명에 대한 연민은 아예 없단 말인가.

난 가슴이 아려오고 철사에 휘감긴 어린 소나무들을 더 이상 바라보기조차 힘들어 곧 분재 농원을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소나무들이 내지르는 비명의 여운이 이어졌고, 문득 얼마 전 러시아 민담에서 읽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픽사베이

오래 전 한 은자(隱者)가 푸른 숲속에 살았다. 그는 순진무구한 정신과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숲속의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도 짝을 지어 찾아와서 그의 이야기에 취해 있곤 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사랑에 대해 말하려 했을 때 표범이 머리를 들며 물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려 하십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동반자는 어디 계신지요?”

은자가 대답했다. “나에게는 동반자가 없소.”

그러자 은자의 주위에 모여 있던 짐승과 새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동반자와 함께 겪었던 자신의 체험도 없이 어떻게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요?”

결국 짐승과 새의 무리들은 은자를 그곳에 홀로 남겨둔 채 조용히 떠났다. 그 날밤 은자는 자기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비통하게 울면서 후회로 가슴을 쳤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영적 삶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인류를 사랑하라고 떠벌리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라니! 이런 추상적인 사랑을 떠벌리는 이는 박제된 새와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닐까. 박제된 새도 살아 있는 새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고통은 물론 이웃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허식(虛飾)의 상징이 아닌가.

앞에서 분재 농원의 소나무 얘기를 했지만, 최근의 식물학에 살펴보면 식물도 인간처럼 오감이 살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촉감이 살아 있는 소나무들이 굵은 철사에 챙챙 감기며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까. 하지만 생명을 오로지 자본을 축적하는 도구로만 여기는 탐욕스러운 사람은 소나무들이 내지르는 고통의 외마디를 듣지 못했으리라. 인간은 육감(六感), 즉 영적 감각까지 지니고 있다고 뽐내지만, 이런 감각을 활용하고 자기 삶으로 실천하는 이는 매우 드물다.

진정한 사랑은 아픔으로 울부짖는 한 사람 곁에서 같이 아파하는 것이고, 고통받는 생명이나 고통받는 사람 곁에서 같이 울어주는 것이다. 무작스러운 난개발이나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는 지구 생명들을 보며 아파하는 연민의 마음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미소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만, 고통받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아닐까.

글 고진하(목사·시인·원주 불편당 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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