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허가방’ 김인섭, 백현동 사업 옥중 대관(對官)업무”[법조 Zoom In]

김태성 기자 2022. 9. 1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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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백현동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 50m가 넘는 옹벽이 설치돼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015~2016년 수감 중이었던 김인섭 씨가 나를 통해 성남시 백현동 사업 관련 대관 업무를 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이 같은 취지의 내용이 담긴 법원 증거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이 문건은 2017년부터 백현동 사업 시행사 지분을 놓고 한국하우징기술 김인섭 전 대표(69)와 민간사업자 아시아디벨로퍼 정모 대표(67) 사이에 벌어진 민사소송 과정에서 김 전 대표의 옛 동업자인 김모 씨(54)가 김 전 대표의 부탁으로 법원에 제출한 증인진술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2006년 성남시장 선거 당시 선대본부장을 지낸 김 전 대표는 2015~2016년 백현동 사업 인허가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허가방'으로 불렸다. 김 전 대표는 2020년 법원 결정을 통해 민간사업자 정 대표에게 70억 원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사업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그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달 김 전 대표 등 사업 관련자들을 불러 김 전 대표가 ‘옥중 대관 업무’를 했다는 증인진술서 내용의 진위 여부를 추궁하는 등 백현동 특혜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인섭 옛 동업자 “김인섭이 백현동 사업 옥중 대관 업무”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5년 4월 백현동 사업과 별개의 ‘성남 빗물저류조 공사비리’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김 전 대표는 이듬해 4월 형기를 채우고 출소했다. 김 전 대표가 구치소에 있던 시기 성남시는 ‘자연녹지→준주거지 4단계 용도변경’ ‘임대주택 100%→10% 축소’ 등 백현동 사업 주요 인허가를 결정했다. 그런데 출소 직후인 2016년 5월 김 전 대표는 정 대표에게 백현동 사업 시행사 지분을 절반 넘게 넘겨받아 본인이 최대주주가 되는 주식매매계약을 요구해 체결시켰다.

이후 정 대표가 계약에 따라 주식을 넘기지 않고 버티자 김 전 대표는 2017년 11월 정 대표 측을 상대로 “주식 양도 절차를 이행하라”며 서울동부지법에 소송을 냈다. 2019년 10월 1심 재판부는 “정 대표가 287억 원을 지급받고 주식을 넘기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전 대표가 2015년 4월~2016년 4월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며 “계약이 김 전 대표의 백현동 개발사업에 대한 기여에 비해 유리한 내용으로 보인다”고 김 전 대표의 출소 직후 이처럼 수상한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된 경위에 의문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이 심리한 항소심에서는 옥중에 있던 김 전 대표의 실제 ‘사업 기여’가 쟁점이 됐다. 재판 과정에서 정 대표 측은 “김 전 대표가 기여한 부분이 없고 주식매매계약은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체결해준 것이라 무효”라고 주장했고 김 전 대표 측은 “실제 내가 사업에 기여한 몫이 크다”고 맞섰다. 경찰이 확보한 동업자 김 씨의 증인진술서는 당시 김 전 대표 측이 자신의 사업 기여를 입증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김 씨는 증인진술서를 통해 “제가 2015~2016년 수감 중인 김 전 대표를 면회하며 사업 관련 소식을 전하고 이야기를 들은 뒤 직접 성남시청 등을 방문해 대관 업무를 했다”며 ”정 대표는 제가 동석한 상태에서 김 전 대표를 3차례 면회하기도 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김 전 대표가 김 씨를 통로로 옥중에서도 백현동 사업을 챙기고 대관 업무를 하며 사업 진행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또 증인진술서에는 “2014년 말 ‘2종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안 되면 수익성이 없으니 사업을 접겠다’는 정 대표를 김 전 대표가 ‘준주거지 용도변경은 사업성이 있다’며 설득해 사업이 진행되도록 했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김 전 대표가 2015년 1월 백현동 개발사업에 참여했다”고 적시했는데 김 전 대표가 실제 사업에 참여한 시기는 이보다 더 이르다는 것이다. 또 애당초 자연녹지→준주거지 용도변경을 통한 사업 추진은 김 전 대표의 생각이었다는 취지다.

김 씨의 증인진술서 등 관련 증거를 토대로 사건을 심리한 2심 재판부는 2020년 9월 “정 대표가 김 전 대표에게 주식매매계약 이행 대신 70억 원을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소송이 정식 판결이 아닌 당사자간 화해 권고 결정으로 마무리된 탓에 실제 계약 체결 경위나 김 전 대표의 사업 과정에서의 구체적 역할 등 사실관계에 대해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재판기록 확보한 경찰, 관련자 불러 조사하며 수사 속도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증인진술서를 비롯해 당시 공판조서 등 재판 기록을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달 중순 해당 증인진술서를 작성한 김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증인진술서 관련 내용을 추궁했고 지난달 말 김 전 대표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경찰에 “김 전 대표를 자주 면회하며 사업 진행 상황을 전해주고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의 지시를 받고 성남시 실무 부서를 찾아가거나 담당자를 만난 적은 없었다”며 내용이 다소 과장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증인진술서 작성 경위에 대해 “당시 소송 중이던 김 전 대표의 부탁을 받고 내용을 협의해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다만 김 씨는 준주거지 용도변경을 통한 사업 추진을 김 전 대표가 설득했다는 증인진술서 내용에 대해서는 “김 전 대표에게 실제로 그렇게 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경찰은 민간사업자 정 대표도 현재까지 네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정 대표는 백현동 사업 진행 과정에서 옥중에 있던 김 전 대표는 실제로 역할을 한 것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증인진술서 내용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또 2016년 5월 주식매매계약은 김 전 대표의 대관 업무 등 사업 기여에 대한 대가가 아니고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맺어준 것이란 입장이다.

정 대표는 경찰에 “2016년 4월 ‘백현동 사업 지분 절반을 넘기라’는 김 전 대표 측 요구를 거부한 뒤 ‘혼자서 (사업을) 잘 끌고 갈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며 “동시에 성남시의 백현동 사업 지구단위계획 입안 결정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압박을 느껴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체결해줬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증인진술서 상에 김 전 대표가 옥중 대관업무를 했다고 명시된 시기를 전후한 2015년 8월~2016년 5월 정 대표는 김 전 대표 측에 5차례에 걸쳐 총 2억3000만 원을 건넸다. 경찰은 이 돈이 김 전 대표의 활동비로 쓰였거나 로비에 대한 대가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정 대표는 이에 대해 경찰에 “당시 김 전 대표가 변호사비와 사무실 유지비 등을 부탁해 빌려준 것일 뿐”이란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 전 대표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와 측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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