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넷플릭스는 자존심 접고 광고와 타협했나
OTT 시장 전반에 어떤 영향 미칠지 주목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는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광고' '뉴스' '스포츠'다. 이는 광고를 배제하고 콘텐츠 위주의 서비스를 구성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정체성을 규정했고, 실시간 방영이 아닌 콘텐츠 유통에 집중하겠다는 포부와 겹치며 다른 플랫폼과의 차별성을 만들었다. 특히 광고를 배제한 것은 무료+광고로 구성돼 있던 기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유료+콘텐츠로 재편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지금의 '넷플릭스 왕국'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무(無)광고 정책'을 자사의 자존심이자 장점으로 내걸었던 넷플릭스가 최근 광고에 문을 열었다. 넷플릭스는 올해 11월 광고를 결합한 요금제(이하 광고 요금제)를 일부 국가를 시작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왜 넷플릭스는 초기의 회사 철학을 버리고 광고와 타협하게 된 걸까. 광고 요금제가 OTT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요금제는 시장과 구독자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구독자 정체 위기 마주한 넷플릭스
그동안 독보적이었던 넷플릭스의 위상에 균열이 생겼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오징어 게임》 등으로 신드롬을 이끌며 선방하던 넷플릭스에 구독자 정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올 1분기 가입자가 20만 명 줄어들면서 11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2분기에는 97만 명의 구독자가 이탈했다. 구독료 인상 역시 시청자들의 불만을 샀다. 디즈니가 보유한 OTT 플랫폼의 전 세계 가입자 수가 넷플릭스 가입자 수를 넘어서면서 넷플릭스의 위기가 부각됐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에 냉각기가 찾아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회계 컨설팅 기업 PwC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전망: 2022-2026' 보고서를 통해 "스트리밍 시장은 2026년까지 연평균 7.6%로 여전히 성장하겠지만, 처음으로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성장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신규 가입자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에 직면했다. 넷플릭스는 2022년 4월 20만 명의 가입자를 잃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구독자 감소와 수익성 둔화. 결국 넷플릭스가 광고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무료체험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수익성 개선을 꾀했던 넷플릭스다. 기존 구독자가 이탈하고 있는 데다, 비싼 요금제 때문에 새로운 구독자의 진입도 쉽지 않다. 저가형 요금제와 함께 수익을 늘릴 방안도 필요한 상황. 그 답을 광고에서 찾은 것이다. 지난 4월 광고가 지원되는 멤버십 요금제를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한 넷플릭스는 6월에 열린 세계 최대 국제광고제인 칸 라이언즈에 참석하면서 광고 도입을 기정사실화했다. 당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는 "가격을 낮춰주면 광고를 기꺼이 볼 소비자들이 있다. 그간 이들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광고 도입 계획을 분명히 했다. 넷플릭스가 광고 파트너로 낙점한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다.
넷플릭스는 최소 6개의 국가에서 해당 요금제를 먼저 도입한 뒤 내년에 전 세계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국가들의 반응을 살핀 뒤 내년 정도에 한국에 해당 요금제를 출시할 가능성이 있지만, 넷플릭스 측은 출시 시기와 방식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기존 구독 요금제와는 별도로 소비자들에게 좀 더 저렴한 별도의 요금제를 추가 제공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다만 초기 단계이니만큼, 광고 요금제에 대한 시기, 방법 등 구체적인 사안은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회원분들께 더욱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최적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고 요금제의 윤곽은?
외신을 통해 알려진 광고 요금제의 가격은 가장 많이 쓰이는 스탠더드 요금제(15.49달러)의 절반 수준인 월 7~9달러다. 다시 말해 광고를 보는 멤버십 상품의 요금제는 일반적인 요금보다 절반 정도 저렴하게 출시될 전망이다. 디즈니+도 12월8일부터 요금제를 개편할 계획인데, 형태가 사뭇 다르다. 디즈니+는 현재 7.99달러(국내는 월 9900원)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 요금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광고를 봐야 한다. 광고를 보지 않으려면 10.99달러의 상위 요금제를 선택하면 된다. 광고를 전제로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는 넷플릭스와 달리, 디즈니+는 광고가 없는 상위 요금제를 신설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와 어린이들을 위한 콘텐츠에는 광고를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지난 5월 디즈니+는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는 광고를 넣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는데, 여러 리스크를 피해 비슷한 노선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구글과 유튜브는 어린이들의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1억7000만 달러가 넘는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다. 이후 구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타깃 광고를 금지했고, 유튜브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동영상을 유튜브 키즈에서 삭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에 광고가 삽입되지 않는다면 넷플릭스의 경우 오히려 저렴한 요금제로 광고 없는 어린이 콘텐츠를 스트리밍할 수 있어 구독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광고 요금제에 대해 구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넷플릭스는 광고를 도입하면서 가격을 기존대로 유지하거나 올린 게 아니라, 저렴한 요금제를 등장시켰다. 넷플릭스에 충성도를 가진 기존 구독자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얘기다. 디즈니+처럼 기존 요금을 유지하면서 광고를 보라고 하면 이탈이 일어날 수 있지만, 광고를 전제로 요금을 낮춰줄 경우 소비자는 선택권을 갖게 된다. 넷플릭스를 해지할 생각이 있는 구독자나 신규 가입을 고려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요금제는 새로운 선택지로 작용할 수 있다.
요금이 저렴하다면 구독자들의 반감도 크지 않다. 해외 OTT 시장에서 이미 광고 요금제는 통했다. 훌루는 광고 없는 기본 요금제를 11.99달러에, 광고가 포함된 요금제는 5.99달러에 제공하는데, 이미 2019년에 광고 요금제 이용자 비중이 70%를 넘어섰다. 디즈니가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는 이유 역시 훌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결국 디즈니는 디즈니+ 구독자의 대다수가 광고 요금제를 선택할 것으로 본다. 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의 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를 기준으로 파라마운트+는 69%, 피콕 프리미엄은 71%, 디스커버리+는 64%의 구독자가 광고 요금제를 이용하고 있다. 가장 비중이 낮은 HBO 맥스의 광고 요금제 이용 비중도 43%다.
그렇다면 국내 이용자들은 호응할까. OTT 구독을 지속할지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콘텐츠'와 '요금'이다. 시장조사기관 오픈서베이의 'OTT 서비스 트렌드 리포트 2022'에 따르면 OTT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 1위는 구독료가 너무 비싸져서(49.1%)였다. 특히 10대의 경우 63.6%, 20대는 53.8%가 비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OTT 서비스를 해지한 이후 재가입하는 이유는 '보고 싶은 콘텐츠가 생겨서' '구독료를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겨서' '주변에 계정을 공유할 대상이 생겨서' 등의 순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서비스 재이용에도 요금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넷플릭스의 브랜드 로열티 형성을 방해하는 요소는 비싼 구독료(58.7%)라는 응답이 1위를 차지해 '비다양성'이나 콘텐츠 부족이 단점으로 제기된 타 플랫폼에 비해 구독료 이슈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비용에 초점을 맞추는 소비자들은 광고 요금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구독료가 저렴해진다면 광고가 있어도 좋다'는 의견이 28.3%, '구독료 인하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42%에 달했다. 아무리 저렴해져도 광고는 싫다는 29.8%의 구독자는 기존 요금제를 유지할 것이고, 그 외의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수준의 요금제가 제시될 경우 광고 요금제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대 4인의 계정 공유를 통해 4분의 1의 요금을 내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광고 요금제가 가입자 수 증가에 긍정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요금이 얼마나 저렴하게 책정되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다.
"광고 요금제, 구독자 모을 동력 될 것"
기존 가입자들이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요금제로 인한 수익은 줄어들겠지만, 그 이상의 수익을 광고를 통해 창출할 수 있다. 유튜브의 성장 뒤에도 이 같은 계산이 있다. 광고를 본다면 따로 요금을 내지 않지만, 무료라는 키워드로 많은 구독자를 불러모음으로써 막대한 광고 수익을 확보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업계 평균을 상회하는 광고 비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2억 명이 넘는 고객의 시청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고, 타깃 광고가 가능하다는 점, 특정 장르에 맞는 광고를 편성할 수 있다는 점, 나라별로 다른 광고를 넣을 수 있다는 장점들을 부각할 가능성이 높다. 요금제로 인한 수익은 하락하더라도 결국 총수익에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미디어 조사기관 라이트쉐드 파트너스는 넷플릭스가 광고 요금제를 출시할 경우 온라인 동영상 광고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기업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미국에서만 연간 약 40억 달러의 광고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도 광고 도입이 OTT 플랫폼의 실적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기능할 것으로 본다. 《구독경제-소유의 종말》의 저자이자 구독경제 전문가인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는 "OTT 서비스 해지 후 재가입을 하는 요인 2위가 '구독료 할인'이다. 넷플릭스는 할인된 광고 요금제 도입을 통해 다시 구독자들을 모을 수 있는 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광고를 보지 않으려면 추가적인 요금을 내야 하는 디즈니+와 달리 광고를 보면 구독료를 '할인'해 주는 넷플릭스의 전략은 광고 요금제를 받아들이는 세계적 추세를 볼 때 주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디즈니+가 광고를 도입하더라도 구독료는 동일하기 때문에 해지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특히 자녀를 가진 3040세대는 아이들을 위해 구독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이 전용 콘텐츠에는 광고를 넣지 않기 때문에 광고 요금제 도입을 이유로 서비스를 해지할 확률이 낮다. 디즈니+ 역시 나름의 묘수를 찾았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의 광고 요금제 도입은 하나의 기업뿐 아니라 OTT 시장 전체의 중요한 시험 결과를 끌어낼 지표가 될 전망이다. 국내 OTT도 이와 같은 노선을 취하게 될지 주목되는 상황에서, 국내 유료방송업계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미 TV에서 OTT 시장으로 콘텐츠 플랫폼의 무게중심이 넘어온 지금, 14조원 규모의 국내 광고시장을 놓고 글로벌 OTT 플랫폼과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광고와 손잡고 OTT 시장과 광고시장을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출사표를 던진 넷플릭스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올 하반기 해외에서 입증될 광고 요금제의 성적표에 따라, 시장에는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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