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의 훔친 다이아몬드, 콩고인의 잘린 손목, 머스크의 우주여행, 그리고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지난 8일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타계를 계기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던 여왕의 온화한 이미지 속에 가려진 과거 제국주의 역사가 재조명 받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영국 왕관에 박힌 105.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는 과거 식민지인 인도에서 강탈한 것이라며 이제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해시태그(#KohinoorDiamona)와 함께 올라오고 있다.
또 1950년대 케나 학살 피해자 후손들도 여왕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1952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개월 뒤 있었던 케냐 마우마우족 독립운동으로 반란에 가담했다는 명목으로 수년에 걸쳐 42만 명이 학살당했다. 케냐 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은 영국으로부터 학살, 폭행, 고문, 성폭행 등 끔찍한 탄압과 억압의 역사를 갖고 있다. 여왕은 영국에 의해 자행된 인종학살 등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자메이카의 각계 인사 100여 명은 올해 6월 여왕의 재위 70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아 아프리카 노예에 대한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여왕은 물론 답장하지 않았다.
여왕의 죽음으로 재조명 받는 영국의 식민지 수탈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 탄압, 약탈의 역사와 유사하다. 여왕의 침묵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 거부와 대동소이하다.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이후 멀게만 보였던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이 바로 내가 직면해야만 하는 문제가 되는 현상을 더 자주 경험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인해 자동차 품귀 현상이 일어났으며, 인플레이션은 당장 내 통장을 '텅장'(텅빈 통장)으로 만들어버렸고, 1400원대로 향해가는 환율 급등으로 새로 출시될 아이폰 모델의 가격은 200만원을 육박하게 생겼다.
일간지에서 오랫동안 국제뉴스를 보도해온 베테랑 기자 출신 저자들이 함께 쓴 <성냥과 버섯구름>(오애리.구정은 지음, 학고재 펴냄)은 너무 큰 이야기라 체감하기 힘들어 스쳐 지나갔던 국제뉴스와 내 일상의 연관성을 다룬다.
저자들은 배터리, 못, 샴푸, 성냥, 고무, 생리대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물건들의 역사와 전쟁, 제국주의 만행, 노동 착취, 여성 인권 등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려준다. 또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깨닫게 해준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8년까지 벨기에의 레오폴트 2세는 콩고에 대규모 고무 농장을 세우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고무를 채취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벨기에 군인과 농장 관리자들은 국왕의 명령으로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고무 채취 할당량을 부과하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원주민들의 손목을 잘랐다. '과거의 일'로 여겨졌던 레오폴트 2세의 만행은 2020년 6월 미국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 문제에 공감하는 시위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2020년 6월 벨기에 시민들은 콩고 식민지 참상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왕실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런 영향으로 필리프 국왕은 콩고민주공화국 독립 60주년을 맞아 콩고 대통령에게 축하서한을 보내면서 벨기에의 잔혹 행위에 대해 사과했다.
이 책은 '현재 진행형' 이슈들을 외면할 경우,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등 울트라 슈퍼 리치들이 앞다퉈 우주 여행을 즐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2019년 등장한 코로나19에 대항하는 백신은 온 세계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불과 1년여 만에 만들어졌지만, 말라리아 백신은 2021년 10월에서야 공식 승인을 받았다. 말라리아 원충은 5-10만 년전부터 존재했고, 유럽의 과학자들이 말라리아 모기와 원충 연구로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것이 120년 전이지만 치료제가 최근에서야 만들어진 것은 결국 '가난한 나라, 빈민들의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쓰는 것들, 뉴스에서 한번 듣고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 흥미로운 화제 정도로 생각했던 사건 속에 숨겨진 의미와 역사를 뒤짚어보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올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세계는 요동치고 있고, 혹자는 '제3차 세계대전'을 걱정하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가 어디로 가는 지는 '나' 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석학'도 모른다는 점에서 똑같다. 70억 지구인 중 한 사람으로 역사의 물줄기에 '한 스푼'의 선한 의지라도 보태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실천이 아닐까.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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