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거장 안젤름 키퍼의 매혹적인 폐허 [영감 한 스푼]

김민기자 2022. 9. 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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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폐허,
파괴는 또 다른 시작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에서 선보인 전시 이 글들은 불에 탄 다음에야 빛을 발할 것이다 의 작품 앞에 선 안젤름 키퍼. 사진: Georges Poncet, Courtesy Gagosian and Fondazione Musei Civici Venezia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혼자서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달을 찾아보며 감상에 젖을 수도, 어떤 사람은 달에서 절구를 찧는다는 토끼를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겠네요. 또 천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알 수 있는 별을 헤아려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밤하늘을 혼자서 본 적이 언제인가 싶기도 한데요.

저는 어릴 적에 밤하늘을 보면 막연한 불안감이 몰려와 잘 쳐다보지 못했답니다. 우연히 창문 밖으로 보인 밤하늘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해 일부러 외면한 적도 있고요.

왜 그랬냐면….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별을 보면 그것이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러면 별에서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그곳에서는 먼지보다도 못한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죠.

이 깨달음을 곱씹다 보면 그날 숙면은 포기해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내 존재를 누군가가 보고 있을까?', '사실 지구 전체가 먼지 구덩이가 불과한 건 아닐까?'라는 답을 할 수도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이죠...

지금은 "아, 나는 불안한 기질을 타고났구나", 혹은 "내 MBTI는 확실히 N이야"라고 그 생각들을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리움미술관 상설전에서 보게 된 안젤름 키퍼의 작품 '고래자리'를 보고 그때 기억이 떠올랐답니다. 오늘은 키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감한스푼 미리보기



매혹적인 폐허, 파괴는 또 다른 시작이다
안젤름 키퍼 '고래자리': 리움미술관 상설전

1. 안젤름 키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자신이 살던 집을 영국군이 폭격하는 날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는 "만약 내가 그날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2. 그러나 키퍼는 전쟁과 독일의 국가주의를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안에는 양면성이 있음을 파고들며 '나치식 경례'를 한 사진 작품으로 스캔들을 일으켰고, 그 후 신화와 종교 등 다양한 영역으로 작품을 확장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3. 키퍼의 작품에서는 모든 것들이 불에 타고 망가진 폐허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 앞에 서면 막연한 허무와 동시에 쾌감이 느껴진다. 이런 '매혹적인 폐허'를 통해 키퍼는 과거의 정해진 것들에 짓눌리지 말고 폐허를 인정하며 그 위에서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권한다.



해바라기씨가 뿌려진 하늘… 인간의 환상?

안젤름 키퍼, 고래자리 (Cetus) 1997년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공간 'M2'에 가면 안젤름 키퍼의 작품 '고래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Cetus'로, 가을철 남쪽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를 의미합니다. 즉 이 그림은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멀리서 봤을 때 먼지처럼 흩뿌려져 있는 검은 점은 하늘 위에 있는 수많은 별을 뜻하는 것이겠죠. 여기에 그려진 가느다란 선은 인간이 그어 낸, 별자리를 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면 멀리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검게 칠해진 해바라기 씨와 조그맣게 적힌 별들의 이름. 사진 출처: 리움


별처럼 보였던 검은 점들은 사실은 해바라기 씨앗입니다. 또 그 가운데에는 'SDK51V', 'PAV'처럼 알파벳과 숫자로 된 기호가 적혀있는데요. 천문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눈치채셨죠? 바로 인간이 붙인 별들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에 대해 키퍼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기호들은 NASA 과학자들이 별에 붙인 이름입니다. 숫자들은 거리와 색, 사이즈 등을 의미해요.

저는 이 이름들이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별자리는 환상이거나 유령 같은거예요. 지금 그 별자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 밤하늘에 보이는 빛은 수백, 수억 년 전에 있던 것이고 그 빛의 원천인 별은 끊임없이 바뀌고 움직이고 소멸하니까요.

오늘 보이는 별빛은 지금의 현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두렵죠.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세상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환상, 천국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버티기가 어려운 거예요."




안젤름 키퍼, 잘 알려진 밤의 질서(Die berühmten Orden der Nacht), 1997년. 사진 출처: 구겐하임 빌바오


제가 왜 '고래자리'를 보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는지 이해되시나요? 수많은 별이 박힌 밤하늘은 이해할 수 없는 질문 투성이입니다. 우주를 이해하기 전 인간의 관점에서는 매일 해와 달이 번갈아 뜨는 것조차 너무나 신비롭고 두려운 일이었겠죠. 그런 미스터리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고대에 그것은 신화였고, 그다음엔 종교였으며, 이제는 과학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키퍼는 그런데 별에 붙여진 이름도 '과학자의 천국'이며 환상과 유령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고래자리' 작품에서 별들을 해바라기씨로 표현한 것과도 이어집니다. 하늘 저 멀리에 있는 별을, 땅에서 나는 씨앗으로 만들었잖아요.

여기에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 위 별의 존재도 결국은 땅 위의 인간이 인식하고 만들어냈다는 것, 두 번째는 태초에 우주가 생겨난 과정을 생각하면 씨앗과 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키퍼는 과학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래자리' 그림을 다시 보면 별들을 잇고 있는 선이 굉장히 힘있게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것이 가느다랗게 별들을 붙잡고 있고, 언젠간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분명히 테두리를 짓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죠.

이 그림은 오히려 무언가를 맹신하는 태도. 내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학적 명제를 맹신하며, 그것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즉 과학이든 종교든 신화든 전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라는 것.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을 만들고 시도하는 과정 자체를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에서 자라다

별자리 작품만 봐서는 키퍼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 뉴스레터 하나에 담기도 부족하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키퍼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드레스덴 출처: cvce.eu


안젤름 키퍼는 1945년 독일 도나우슁겐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무렵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쑥대밭이 되었죠. 키퍼가 태어난 곳은 독일의 작은 마을이고 전쟁과는 관련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폭탄이 남아돈 영국군은 민가도 폭격하기 시작했고, 키퍼의 집도 이로 인해 무너집니다. 다만 그가 태어나던 날 공습이 있었던 덕분에 병원에 갔던 가족들은 목숨을 구합니다. 그렇게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키퍼는 자랐습니다. 가족이 전부 생활할 공간이 모자라 할머니 집에서 자랐던 키퍼는, 장난감이 없어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갖고 놀았다고 회고합니다.

또 어릴 적부터 종교의 깊은 영향을 받고 자란 데다 '완벽'에 집착했던 그는 교황이 되기를 꿈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독일인이 교황이 된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 꿈을 접었다고 하죠. 그다음에는 헌법을 공부하는 법학도가 됩니다. 키퍼는 법을 공부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헌법은 교회의 교리처럼 정신적인 측면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은 그들을 한 데 묶어 줄 맥락이나 이야기가 필요하죠. 이런 측면은 신화도 갖고 있고요. 신화, 종교…. 모든 것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키퍼는 스스로 예술가가 될 것임을 알았지만 미술대학에 바로 가고 싶지 않았고, 인간의 본성을 알기 위해 법학을 공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공부한 뒤 그가 향한 곳은 종교, 바로 수도원이었습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 그는 예술대학에 입학하고 1969년 독일을 뒤흔든 사진집을 발표합니다.

안젤름 키퍼, 점령 (Besetzungen), 1969년


안젤름 키퍼, 점령 (Besetzungen), 1969년


왜 논란이 되었는지 아시겠죠?

키퍼는 나치가 점령했던 유럽의 지역을 다니면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자기 모습을 사진 속에 담습니다. 그리고 '점령'이라는 시리즈로 발표하죠.

제2차 세계대전 패배의 혹독한 상처를 입었던 당시 독일은 나치 역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예술가가 그 이야기를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해내자,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키퍼가 나치를 옹호하는 국가주의자가 아니냐는 의심도 당연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입니다. 건물에서 떨어질 듯, 파도에 휩쓸릴 듯한 모습이죠. 심지어 독일 미술사에서 유명한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초상화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건 잘못된 과거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정면으로 꺼내 이야기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키퍼는 "지금도 나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독일에서 네오나치와 극우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죠. 그는 이런 현상을 아예 배제하고 침묵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잘못된 일이 벌어지는 지를 인간 본성에 비추어 이야기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파괴는 또 다른 시작이다

그렇다면 키퍼의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올해 기회가 된다면 꼭 봐야 할 전시로 꼽을 만한, 베니스비엔날레 두칼레 궁전에서 열리고 있는 안젤름 키퍼의 개인전 '이 글들은 불에 탄 다음에야 빛을 발할 것이다'(Questi scritti, quando verranno bruciati, daranno finalmente un po’ di luce)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베니스 두칼레궁전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개인전 전경. Anselm Kiefer Photo: Georges Poncet Courtesy Gagosian and Fondazione Musei Civici Venezia


베니스 두칼레궁전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개인전 전경. Anselm Kiefer Photo: Georges Poncet Courtesy Gagosian and Fondazione Musei Civici Venezia


베니스 두칼레궁전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개인전 전경. Anselm Kiefer Photo: Georges Poncet Courtesy Gagosian and Fondazione Musei Civici Venezia


사진으로만 봐도 웅장한 규모가 가늠됩니다.

제가 키퍼의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매혹적인 폐허'가 이제는 베니스의 가장 유서 깊은 공간인 두칼레 궁전에 열렸다고 하니 저도 꼭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이 궁전에 현대미술가가 작품을 전시한 것이 처음이라는 점. 그리고 이곳에는 티치아노를 비롯해 베니스를 거쳐 간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유럽이 가장 빛났던 시절, 반짝이는 그림들이 장식된 곳에 키퍼는 마치 불에 탄 듯한 폐허를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품 제작 과정에서 그림을 불에 태우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 폐허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천정에 보이는 금으로 장식된 회화들이 오히려 덧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키퍼가 이렇게 공간을 연출한 이유는 별자리를 해바라기씨로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것은 언젠가 생명을 다하기에 덧없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덧없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과거의 것들에 짓눌리거나 현혹되지 말고, 나의 별자리를 긋고 나의 성을 쌓으면서 온전히 두 발로 선 삶을 살자는 것이지요.

키퍼가 폐허 속에서 태어나 종교와 법, 그리고 신화 속에서 헤매다 예술을 통해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시 제목도 이해가 되시죠?

'이 글들은 불에 탄 다음에야 빛을 발할 것이다.' 제가 더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한다면 두칼레궁전의 화려한 명작들도 멀리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고, 불에 탈 때에나 환한 빛을 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원래 이 문구는 20세기 베니스 출신의 철학자 안드레아 에모(Andrea Emo)가 한 말로, 생전 어느 글도 발표하지 않아 무명이었다가 뒤늦게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무언가가 존재했다가 사라진다고 흔히 인과관계로 생각하지만, 존재와 무는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키퍼가 이 말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자신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 언제나 머리속에 갖고 있던 아이디어가 소멸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더 타임스 인터뷰에서 키퍼는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작품들은)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주에는 수십억 개의 은하가 있잖아요. ... 그 은하 속에는 또 수십억개의 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별에 당신은 서 있고요. 에모(Emo)는 평생 이 이야기를 자신의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의 무의미함을 알았고 - 그것을 불태우면 약간의 빛을 낼 수는 있다는 것을 알았죠."



당신은 낙관주의자냐고 묻자 키퍼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폐허가 아름다운 건 그것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폐허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키퍼의 말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불안 속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껍질을 만듭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깨고 나와야만 성장을 할 수 있죠. 마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아프락사스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어느 하나의 껍질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말아라. 시간이 지나면, 마치 나비가 번데기를 찢고 나오듯 그것을 버려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은 두렵고 불안할 때 어떤 껍질에 스스로를 기대고 있나요? 그 껍질이 정말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인지, 키퍼의 찬란한 허무매혹적인 폐허 앞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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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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