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동의하셨잖아요, 고객님"..694줄 속에 숨겨둔 말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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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 기업들이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제기돼 왔는데요. 이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작년 2월부터 이들이 법을 위반하지는 않았는지를 조사했고, 지난 14일 그 결과를 발표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부주의했던 게 아니라, 기업들이 사전에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 해요. 그리고 우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IT 기업들은 고객들의 민감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었고요.
개인정보위가 이번에 콕 짚어 지목한 건 세계 최대 IT 기업 중 하나인 구글, 그리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예요. 개인정보위는 구글과 메타에 각각 692억원과 308억원, 총 10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는데요.
발표된 조사 내용을 보면 구글과 메타는 각각 최소 6년, 4년간 고객들의 민감한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해요. 조사 결과를 본 개인정보위는 구글과 메타의 고객 정보 수집이 지속되면 "개인의 사상이나 신념, 정치적 견해, 건강, 신체적·생리적·행동적 특징 및 민감한 정보를 특정할 수 있어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까지 밝혔죠.
구글과 메타는 생각보다 우리를 더 자세히 알고 있어요. 이번에 발표된 개인정보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구글 검색이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활동뿐 아니라 모바일 기기에서 이뤄지는 다른 이용 정보도 수집해요.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했거나,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사용 중이라면 다른 앱을 통한 금융 거래, 음식 배달, 숙박 예약, 인터넷 검색 등과 관련된 정보까지 수집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한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가 이 도구를 쇼핑몰 사이트에 설치했다고 가정해볼게요. 그럼 이 도구는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을 많이 클릭했는지, 제품 상세 정보를 클릭만 하고 구매하지 않은 상품은 무엇이었는지 등 다양한 분석을 해줘요. 운영자는 이를 토대로 더 나은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수정할 수 있고요.
구글이나 메타가 아무 대가 없이 이런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진 않겠죠. 대신 이들은 이 도구를 쓰는 수많은 웹 사이트와 앱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해요. 이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하면 이용자의 신상이나 관심 분야를 추론할 수 있어요. '소득 수준은 중상위에 속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며 로맨스 영화와 고양이, 힙합에 관심이 있는 35~44세의 기혼 남성'이라는 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를 토대로 우리에게 맞춤형 개인 광고를 보내왔던 거고요. 맞춤형 개인 광고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 광고보다 효과가 크기 때문에 광고 단가도 높아요.
개인정보위 입장을 정리하면 '그래, 민감한 정보라도 사전 동의를 받았으면 문제가 없지. 근데 동의받을 때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았잖아?'라는 거예요. 혹시 구글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가입할 때 개인정보 수집 동의 항목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 내용을 기억하는 분들은 거의 없을 듯한데요. 그도 그럴 것이 구글과 메타는 서비스 가입 시에 개인정보 수집과 관련된 내용을 숨겨놨거든요.
◆구글
구글은 '옵션 더보기'라는 항목을 눌러야만 어떠한 정보들이 수집되는지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게 해놨어요. 그리고 그 안에 기본값을 '동의'로 설정해놨죠. 옵션 더보기를 눌러 일일이 '수집 거부'로 수정해놓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동의하게 되는 구조예요. 이런 구조 때문인지 국내 이용자 중 대부분이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했대요. 한국에서 구글 이용자의 82% 이상이 개인정보 수집을 허용하도록 설정해 놓은 것으로 조사됐어요.
◆메타
개인정보위는 메타 역시 이용자들에게 개인정보 수집과 관련된 내용을 사전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어요. 페이스북은 계정을 만들 때 한 번에 다섯 줄밖에 보이지 않는 좁은 스크롤 화면에 개인정보 수집과 관련된 사항을 게시해뒀어요. 694줄에 달하는 전체 내용을 보기엔 불편한 구조죠. 인스타그램은 가입 화면에서 '더 알아보기'를 누르는 경우에만 개인정보 수집 정책의 전체 내용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때문인지 메타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98% 이상이 개인정보 수집을 허용하도록 설정해놓았다고 해요.
구글과 메타는 유럽과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국내 이용자들이 원할 경우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에요. 심지어 이들은 '사실 따져보면 우리는 개인정보 수집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이용자들을 위해 굳이 동의를 받아 온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까지 하는데요. '우린 행태정보 수집 도구를 배포만 했을 뿐이며, 개인정보 수집 동의는 이 도구를 사용해 이용자들의 정보를 수집한 웹 사이트 운영자나 앱 개발자들이 받아야 한다'는 논리예요.
이에 대해 개인정보위는 '결국 구글과 메타도 수집한 개인정보를 토대로 맞춤형 개인 광고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이용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다시 반박했는데요. 구글과 메타는 순순히 과징금을 낼 수는 없다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어요.
맞춤형 개인 광고를 위한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개인정보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요. 또 개인정보보호 법규를 위반한 사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과징금이기도 한데요. 과연 이번 사태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겠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임형준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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