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신각수 전 주일대사 "한일 기업 기금 피해자 배상 입법..日에 신뢰 줘야"

최서진 2022. 9.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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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입법해야…日, 끝난단 전제 있어야 협조"
"한일 기금 쉽지 않아…정부가 참여해야"
"일 기업 국내자산 현금화 빨리 동결해야"
"기시다 정부, 통상규제 선제조치 필요"
"尹정부, 野 끌어들여 외교 초당적으로"
"日, 분위기 개선돼…기시다 韓에 관심"
"유엔 계기 정상회담해야…분위기 조성"
"전기차 늑장대응…美에만 맞춰선 안돼"
"北 담대 계획도 좋지만 담대한 조치도"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15일 제주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09.15. woo1223@newsis.com

[서울=뉴시스]최서진 기자 =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부 1, 2차관, 주일대사를 역임한 신각수 전 주일대사를 15일 제주포럼 현장에서 만났다.

신 전 대사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돈을 내서 기금을 마련 한 뒤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방안을 국회를 통해 입법화해서 완전한 해결책을 일본에게 제시해 신뢰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민주당 등 야당을 초당적으로 설득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통상규제 조치를 해제하는 게 좋다"며 선제적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양국관계가 크게 악화된 이후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네차례 여는 등 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15일 제주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09.15. woo1223@newsis.com

-강제징용 해법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회가 끝났다.

"외교적인 해결을 하려면 중간 어딘 가에서 타협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국회에서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돈을 내서 기금을 마련 한 뒤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방안을 입법해야 한다. 대위변제는 미봉책이다. 1000명 정도 소송을 진행 중인데, 매번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결할 수 없다. 일본 입장에서 끝이라는 전제가 없는 해결 방안은 성립이 안 된다. '일본 기업이 배상에 참여하고 사죄해야 한다'. 두 가지가 들어가려면 결국 일본 입장에선 이것으로 끝이 나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협조를 할 것이다.

-한일 양국 기업이 별도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은 어떻게 보나.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돈을 내자는 건데 쉽지 않다. 일본 입장에서 보기에는 한국 정부가 참여해야 정부를 믿을 수 있는 것이지, 한국 기업이 돈 내서 해결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나. 제일 좋은 외교교섭 결과는 51대 49다. 70대 30은 탈이 나게 돼 있다. 타협의 자세로 51대 49를 만들어서 현안을 해결해버린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일본이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합의가 무력화되는 것을 경험한 거다. 강제동원은 훨씬 더 큰 문제인데 민법상 규정에 근거해 해결한다는 것을 믿겠나. 피해자 중심주의,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만 해서는 해결 안 된다. 피해자는 우리가 도달할 교섭의 낙하지점보다 훨씬 위에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피해자와 일본 정부, 국내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고려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 이걸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시간을 벌기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 국내 자산 현금화를 빨리 동결해야 한다는 거다. 일본도 현금화를 동결하면 통상 규제를 풀고, 지소미아도 정상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분위기가 개선된다. 정상회담 할 수 있고, 셔틀 외교를 복원하고 전략대화를 강화할 수 있다. 현금화 동결 후 초당적 입법을 위해 노력하고, 그 사이에 일본의 통상 규제와 한국의 지소미아를 정상화하고 전략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한국 LG와 일본 혼다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한다. 반도체도 SK가 일본의 도시바에 투자했다. 4차 산업 분야에서는 이런 협력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 영역도 정치 부분이 개선되면 앞으로 나간다."

-정부와 국민, 이해당사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있을까.

"피해자도 피해자가 추구하는 100%를 얻을 수는 없다. 피해자가 요구하는 핵심은 두 가지다. 일본 기업의 배상 참여와 사죄다. 나는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법을 내면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사죄는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방향으로 목표를 정하고 피해자도 설득하면서 해결을 모색한다면 가능하다. 물론 어려운 과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기술적으로 야당을 설득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고. 그러나 그게 안되면 한일관계는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진다. 전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합의는 없다. 이 문제의 복잡성에 비춰볼 때 국내에서도 70%만 만족시키면 나는 괜찮은 합의라 본다."

-여전히 일본의 반응은 없다.

"첫째. 윤석열 정부 지지율 떨어져 있다. 둘째. 여소야대다. 셋째. 과거 정부에서 (대일 정책이) 많이 바뀌었다. 이에 대한 일종의 (일본의) 학습효과다. 그러니까 한국 정부에서 구체적인 게 나오지 않는 한 움직일 수 없다는 거다. 여전히 차갑다. 하지만 일본 정부도 통상규제 조치는 빨리 해제하는 게 좋다. 일본 정부가 통상규제 조치를 먼저 해제하면 한국 정부도 지소미아를 정상화 시킬 것 아닌가. 그럼 훨씬 더 일하기 쉬워진다. 현금화 조치를 먼저 기다리지 말고 일본이 선제 조치를 해주면 한국 정부도 그에 따른 대응을 해줄 것 아닌가. 그런 식의 적극적인 접근은 기시다 정부가 취할 필요가 있다."

-현금화가 실행된다면?

"한일관계는 굉장히 어려울 거다. 일본은 한일관계 기반이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조약체계에 의해 구축돼왔다고 본다. 이 근간을 흔든다고 생각할 거다. 대법원 계류 중인 사건 전체를 따져도 1억 달러가 안 된다. 돈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일본은 원칙과 법치에 집착하는 나라다. 그게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심각하게 보는 거다. 대법원 결정이 남았으니까 현금화 시기가 불확실하다. 대법원도 여론의 압력을 받고 있다. 마냥 미루고 있단 인상을 주기 싫을 것 아닌가. 사법부에 있는 판검사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이 일본에 지속해서 '성의 있는 호응'을 요구하는 저자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구체적으로 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나. 전 정부가 북한과 중국 위주였다면 미국과 일본 위주로 바꾸는 것 아닌가. 한미 관계는 이미 상당히 진전됐다. 하지만 한일은 아직 없다. 이걸 빨리 개선해보겠다는 적극적 외교 자세라 봐야지 왜 대일 굴종이라고 하나. 우리가 일본에 양보한 게 있나? 우리가 보수와 진보 대립이 굉장히 양극화돼 있어서 그렇다. 윤석열 정부도 외교를 초당적으로 하면서 좀 더 야당에 공간을 마련해주면서 끌어들여야 한다. 그 부분은 윤 정부의 과제다. 방향 설정 자체를 굴종으로 바라보는 건 투머치하다."

-기시다 총리의 일본을 어떻게 보나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 가장 리버럴에 속한다. 히로시마 출신으로 핵 군축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아시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내재적인 욕구는 있다고 본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2015년 당시 위안부 합의 당사자다. 거기에 대한 섭섭함이랄까 그런 게 있다. 자민당 내 우파들도 (한국에 대해) 견제를 많이 한다. 특히 자민당 외교부회에는 상당히 오른쪽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조심해서 대한외교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여건이다. 취임 초기보단 훨씬 (분위기가) 개선됐다.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를 이겼다. 앞으로 3년간 큰 정치 일정이 없다는 이점이 있다."

-한일 관계 개선 가능성은?

"40~50대 여론조사를 보면 진보가 많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진보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진보가 세고, 일본은 보수가 세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에 상당히 너그러웠던 여론이 상당히 급격히 바뀌고 있다. 북한이 핵도발을 하고, 중국은 사드 '3불1한' 얘기를 하는 상황이 되니 북한과 중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다. 그런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한일 관계를 상대적으로 좋게 하기 위한 여건이 됐다."

-일본과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 우선 북한 핵 문제가 있다. 결국 우리나라와 일본은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 당사자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여유가 있고 우리는 없다. 한일 공조에서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 구조다. 양국이 갈라져 있으면 대북 협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손해가 된다.

중국은 탈냉전과 함께 퇴색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대신 채운 게 민족주의다. 수직적 중화질서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이 전략적 위치와 가치를 확보하려면 주변 국가와 협조해야 하고, 이 지역에서 제일 위상이 높고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협조해야 한다."

-한일 양국 국민 호감도가 2019년 불매운동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게 첫번째 원인이다. 두번째는 일본 내에서 소위 우리 K-컬쳐 붐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일본이 내달부터 한국 등 관광객의 노비자를 허용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간 여행으로 인적교류가 정상화되면 관계 개선에도 상당히 플러스 요인이다."

-일본 현지 분위기는 어떻게 보나.

"한국이 관계회복을 위해 뭔가 해보려고 한다는 건 일본도 인식하고 있고 좋게 평가하고 있다. 다만 한국이 하는 건 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요즘 한국에 협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15일 제주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09.15. woo1223@newsis.com

-유엔 총회 계기로 한일 정상간 회담이 열린다.

"회담이 개최되면 기본적으로는 한일간 전략대화 차원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을 순 있다. 그런데 강제동원 문제는 곤혹스러울 것 같다.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 한일양국 분위기 조성 측면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러나 했으면 좋겠다. 과거사 이외에 다른 문제에 대한 협력에도 일본이 진지하게 나온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미국과 중국 간 대립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예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최근 미국 '인플레레이션 감축법'(IRA) 전기차 보조금과 관련해 이제 와서 늑장 대응을 하는 것은 좀 창피하다. 미국 민주당 내 강경파를 설득하기 위해 비밀에 붙여 어려웠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법안은 일찌감치 나왔다. 정말 정신 차리고 종합적으로 사안 하나하나를 우리 국익과 원칙을 기반으로 판단해야 한다. 모든 걸 다 미국에 맞춰서는 안 된다. 미국도 미국우선주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큰 틀로 가면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한중관계 관리'지만, 세부 디테일로 들어가면 악마가 도사리고 있으니까 잘 다뤄야 한다."

-한국판 인태전략은 어떻게 구상해야 하나.

"미국에 완전히 편승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인태전략이 필요하다. 우리가 인도 태평양 국가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려면 우리의 시각과 가치와 이익을 반영한 인태 전략이 나와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일본과 상당한 협력의 여지가 있다. 양국 관계가 좋아지면 인태 협력도 회복되리라 본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인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에서 소외됐다. 윤석열 정부가 벌충해야 할 분야다."

-대북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나.

"북한은 지금까지 반응으로 보건대 쉽게 대화에 응할 것 같지 않다.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더 나은 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담대한 구상'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있어선 곤란하다. 이미 위협은 현실화했는데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상대를 데리고 포기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관측만 갖고 임할 순 없다. 확장억지대화도 재개했는데 좀 더 억지·방어적 관점에서 핵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담대한 제안은 좋지만, 담대한 조치도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평가한다면.

"방향 자체는 잘 설정했고, 결국 그걸 현실로 이행하는 게 남았다. 만만치는 않다. 지난 5년 동안 외교 좌표축을 상당히 왼쪽으로 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가는 전환 과정이 쉽지 않다.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전체적 방향을 개별적 조치나 이슈·국가별 정책으로 실행해나가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westj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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