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법만 제대로 작동했어도"..'잠정조치 4호' 10건 중 6건 기각
(서울=뉴스1) 조현기 원태성 기자 = 제2·3의 '신당역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현행법으로 가능한 '잠정조치 4호'를 적극 활용하고 영장심사 때 '증거인멸 위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궁극적으로는 피해자 위해 가능성'을 형사소송법에 명시해 구속영장이 발부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법 개정 전까지는 현재 있는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 B씨(28)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A씨(31)를 검거해 수사 중이다. A씨는 약 1시간10분 동안 화장실 앞에서 대기하다가 B씨가 여자화장실을 순찰하러 들어가자 뒤따라가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같은 날 밤 11시31분 숨졌다.
◇ "1달 구금 가능한 스토킹 처벌법 '잠정조치 4호' 적극 적용해야"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스토킹을 예방할 수 있는 '스토킹 관련 처벌법 잠정조치 4호'를 제대로 시행하자고 제언했다.
지난해 10월21일 시행된 '스토킹 관련 처벌법'은 재발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도록 긴급응급조치(위반 시 과태료 1000만원 이하)와 잠정조치(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를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잠정조치는 △1호(서면 경고) △2호(피해자·주거지 등 100m 이내 접근금지) △3호(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4호(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최대 한 달간 구금) 등으로 나뉜다.
이 교수는 가해자를 유치장에 가둬 스토킹 범죄를 강력하게 예방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가 유명무실화됐다며 관련 제도를 제대로 시행해 스토킹 범죄를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스토킹 처벌법 잠정조치 청구·결정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0월21일부터 지난 7월31일까지 9개월여 동안 경찰은 5743건의 잠정조치를 검찰에 신청했다. 이 가운데 검찰에서 694건(12%), 법원에서 291건(5%) 등 총 17%가 기각됐다.
문제는 가해자를 유치장에 가둬 스토킹 범죄를 강력하게 예방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에 대한 기각률이 높았다는 점이다. 올해(1월~7월) 신청된 '잠정조치 4호' 10건 중 6건(500건 중 275건 기각, 55%)은 기각됐다.
이 교수는 "경찰관이 법원에 청구해서 한 달 동안 구치소라든가 경찰서 유치장에 잠정적으로 신체 자체를 구금시킬 수 있는 조치가 이미 있다"며 "이런 조치를 적극적으로 실행했어야 했는데 (검찰과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낮다"고 강조했다.
◇ "영장심사시 '증거인멸의 위험' 적극 해석…'피해자 위해 가능성' 법에 직접 명시"
시민단체와 인권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론 '피해자 위해 가능성'을 형사소송법에 직접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법률 개정 전까진 사법부가 구속영장심사시 '증거인멸의 위험'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법원은 지난해 10월9일 카메라 및 촬영물 등을 이용해 B씨를 협박해 성폭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 및 도주 우려가 없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 및 전 서울대 인권센터)는 "법이 직접 명시 및 열거하는 구속 사유에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가 명시돼 있지 않아 우선적으로 피해자를 고려해 가해자를 구속하기는 다소 어렵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70조 1항에는 제1차적인(독립적인) 구속 사유로 △주거부정 △증거인멸의 위험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를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는 법에 직접 명시돼 있지 않아 사법부가 최우선 요소로 고려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박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개정 전까진 사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형사소송법을 해석해 스토킹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직접 명시된) '증거인멸의 위험'이라고 좀 더 적극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사법절차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한 가치를 갖는 증거의 하나임을 고려할 때 이는 체계 정합성에 어긋나는 무리한 해석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금 상황에서도 충분히 스토킹 범죄 가해자를 구금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아울러 박 변호사는 궁극적으론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 피해자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년 동안 신당역 살인사건과 유사한 여러 피해사례가 누적돼 왔다"며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나 재범의 위험성을 단지 한 가지의 고려사유로 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구속사유로 격상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도 "격리 조치와 관련해 인권문제가 있지만, 신당역 살인사건과 같은 끔찍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구속영장 심사 기준에 '피해자 위해 가능성'을 넣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cho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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