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살아서 퇴근하고 싶습니다
끝내 살해당하는 사건들 수없이 반복
여성 혼자 화장실 가기도 무서운 세상
강력범죄엔 무거운 처벌 꼭 뒤따라야
지난 9월 14일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순찰 중이던 여성 역무원 A씨가 남성 동료 B씨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가해자는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이었으나 화장실 몰카로 직위해제된 사람이었고, 불법 촬영과 스토킹 등의 범죄로 이미 징역 9년이 구형된 사람이었습니다. 그 남성에게 무려 3년이나 심각한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흉기에 찔려 죽어가는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비상 호출 버튼을 눌러 현장에서 피의자가 검거될 수 있도록 한 그녀의 용기를 생각하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지하철 역무원이 살해당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하지만, 아무런 잘못이 없는 스토킹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은 수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자화장실을 순찰하다가, 즉 우리 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려다가 살해당했습니다. 그녀는 스토킹이라는 무서운 범죄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겨우 스물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스토킹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매일 무시무시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스토킹 피해자가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여동생은 증언했습니다. “직원들이 피해자가 우리 언니인 줄 모르고 그 사람(가해자)은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누가 신고했을까라는 식으로 두둔했다고 한다. 그때 직원들이 언니를 한 번 죽인 것”이라고. 피해자 여동생의 인터뷰가 밤새도록 머릿속을 맴돌아 가슴 한구석에서 아프게 메아리를 쳤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줍니다. 그것이 바로 2차 트라우마를 가져옵니다. 그 사람 착한 사람인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 그 말은 피해자의 가슴 속에 얼마나 커다란 상처로 남았을까요. 화장실 몰카로 직위해제된 사람이 착한 사람인가요? 3년이나 스토킹을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 사람이 착한 사람인가요? 서울서부지법은 “증거인멸 및 도주의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이런 말도 고통받는 사람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스토킹 가해자는 증거인멸 및 도주의 위험뿐 아니라 피해자의 생명까지 위협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를 처음 본 날, 저는 지방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이런 절규가 터져나왔습니다. “너무 무섭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무서워.” 여성이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이 공포가 처음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이런 공포에 떨었습니다.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받고, 다치고, 죽을 때마다, 저는 이런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우리는 혼자 지하주차장에 가야 할 때도 무섭고, 밤길을 혼자 걸어야 할 때도 무섭습니다. 이 비극을 끝장낼 힘이 우리에게 없을까 봐 더더욱 두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더욱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스토킹 범죄에는 반드시 무거운 처벌이 뒤따라야 합니다. 사건에 대해 섣불리 말을 하기 전에 우선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스토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경청해야 합니다. 신당역에는 A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었습니다.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언제까지 강력범죄를 모른 척하는 나라에서 개인이 몸서리치며 살아야 합니까.” 바로 이런 말들이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이며, 먼저 간 사람들이 차마 하지 못한 간절한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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