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덧셈의 외교로 전환해야".."국제정세 걸맞은 한일관계 재건축"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 한일 양국 전문가들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양국 관계 개선의 중대한 모멘텀이라고 저마다 입을 모았다.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현금화) 조치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양국 모두 관계 개선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지만 역사 문제에서 촉발된 갈등은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16일 폐막한 제주포럼에서 한일 양국 전문가들은 양국 관계 진단부터 해결 방안까지 머리를 맞댔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여러 전문가들이 “한일 관계가 다중복합골절 상황”이라고 진단한다고 소개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현재 한일 관계를 “한국은 일본을 경시하고, 일본은 한국을 무시하는, 한일 양측이 상대방의 레이더에 거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시대적 전환기를 맞아 ‘초불확실성’의 상황에서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동맹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간의 협력이 중요해졌지만, 가까운 이웃 한일은 “역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서 냉전의 절정기였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후 두 나라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황금기로 ‘김대중-오부치게이조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있었던 1998년을 꼽는다.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공동선언 이튿날 600명 이상의 일본 중·참의원이 참석한 국회에서 11개의 원칙과 43개의 행동계획을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의 연설에 눈물을 훔치는 의원도 있었다고 한다.
특별세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서 최상용 전 주일대사는 “혁명과 전쟁,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군사력의 조직적인 양극화였던 동서냉전 등 극단의 절대화 시대 20세기의 환혼에 서서 21세기 상대화 시대의 한일관계를 선취한 전략적 관점이 공동선언의 주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최 전 대사는 당시 특별수행원으로 현장에 있었다.
우호적 관계를 이어온 온 한일은 2012년을 기점으로 중대 변화를 맞이한다. 2012년 8월10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했고, 이후 이 대통령의 ‘천황 사과’ 발언에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상 단위의 외교가 멈추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8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 비해 일본 정부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동아시아연구원이 발표한 ‘한일 관계 개선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은 81%가 일본인은 53%만 ‘그렇다’고 답해 양국 국민 인식 격차도 보였다.
이에 대해 니시노 교수는 “과거 10년 동안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실망감도 있고 일본측은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그에 대해 한국측에서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일본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내 여론 또한 충만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낮다는 점도 고려 지점이라는 냉정한 분석도 나온다. 니시노 교수는 “현시점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국내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있다 보니 한일관계 개선 노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한국 국내 분위기가 확실히 형성될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일본 국내에 많다”고 했다.
니시노 교수는 상대국 지도자의 언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국 국민을 고려해 지도자의 언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 전 대사는 “한일 관계를 가장 옥죄고 있는 것은 강제동원 문제”라며 “현금화 문제를 일단 동결하는 형태로 정리가 된다면 강제동원 문제로 파생된 일본의 통상규제, ‘종료의 정지’ 상태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정상화하는 ‘미니 패키지’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관협의회에 참여했던 심규선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하며 “국가가 배상금을 대신 지불하는 협의의 대위변제‘는 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법 취지에 맞지 않고 국민들의 납득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돈을 내고 구상권을 보존하는 방법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기업이 갹출해 배상금을 대신하는 ‘광의의 대위변제’ 방법으로 채택될 가능성을 내다봤다. 한국 기업과 국민정서, 피해자측의 의사를 반영해 일본 기업도 돈을 갹출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했다.
심 전 국장은 “일본 기업과 정부가 사죄할 것이냐는 문제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협의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국면이 남아있다”며 “일본도 동시에 협조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재편되는 신(新)냉전체제의 국제 질서가 변하면서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 이 한미일 협력은 한일 관계 개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케다 료타 일한(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은 “우크라이나 문제도 ‘한 나라의 힘만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한미일 3국이 연결 고리를 구축해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이끌기 위해 상호간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일 관계를 성숙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책임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네하라 노부카쓰 도시샤대학 교수는 이러한 전쟁 속에서 양국 공통의 이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보장상의 이익으로 북한의 위협, 중국의 최근 문제에 대해 한일이 대응해야 한다”며 “산업 관련해서는 한국에 삼성, LG, 현대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이 있고 일본은 부품을 만들어 한국에 수출하고 있어 한일은 ‘하나의 큰 기업’이라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일 관계가 냉랭해진 지난 10년간 양국 국민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급성장했다. 신 전 대사는 “1965년 한일관계가 시작했을 때 한일 간 1인당 GDP 격자는 대략 9:1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물가를 감안한 1인당 GDP를 이야기하면 이미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문화적 차이도 여전하다. 신 전 대사는 “한국은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정의가 없는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일본의 경우 메이지유신 이후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문화”라고 짚었다.
양국 전문가들은 케이팝과 드라마 등 문화 교류로 우호적인 감수성을 지닌 양국 젊은 세대들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 전 대사는 “한일 관계의 미래는 청년에 있다”며 “기성세대에서 청년 세대의 시각을 가미한 방향으로 한일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니시노 교수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양국 국내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커졌다”며 “청년 세대가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고, 그러한 토대를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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