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오래 갔다고 월급 삭감"..직원 학대논란 불거진 이 회사 [위클리 기사단]

신윤재 2022. 9. 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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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기사단-27]
[사진=바이두]
중국의 편의점 체인 볜리펑(便利蜂). 상품 판매부터 직원 관리까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기술(IT)을 최대한 활용 중인 중국 무인 편의점의 대표주자입니다. 2017년 생겨난 신생 브랜드이지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늘리며 중국 전역에 점포를 늘려왔습니다. 볜리펑은 무인 계산대는 물론 전용 앱으로 상품 QR코드를 태그하는 것만으로 결제가 완료되는 등 한발 앞선 시스템으로 주목받았죠.

사실 볜리펑이 중국에서 최초로 생긴 무인 편의점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 무인 편의점들이 중국에서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데 반해, 볜리펑은 점포 수를 2019년 1000곳, 2020년 2000곳, 그리고 지난해 2800곳을 넘게 늘리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같은 기세에 힘입어 "2023년 점포 수 1만개 돌파"라는 목표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순풍에 돛 단 듯 잘나가던 볜리펑이 최근 들어 사업확장 키워드인 IT '무인화'로 인해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중국 현지에서 나오고 있는 소식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직원들 화장실 갈 때도 AI에 보고…시간 초과 땐 감봉

물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매대 곳곳이 비어있는 볜리펑 점포. [사진=바이두]
볜리펑 직원들은 출근을 하면 AI 알고리즘 명령에 따라 일해야 합니다. 퇴근 때까지 점포 내 태블릿을 통해 자신의 업무 내용을 AI에 일일이 보고한다고 하죠. 예컨대 고객 요청에 의해 어떤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 앱을 통해 보고한 뒤 정해진 시간 내 끝마쳐야 합니다. 휴식은 물론이고 화장실에 갈 때도 태블릿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이 시간이 초 단위로 관리되는데, 주어진 시간을 초과하게 되거나 실수가 발생하면 페널티가 발생해 봉급이 자동 차감됩니다. 점포 내부에는 곳곳에 설치된 AI 카메라가 바닥 또는 테이블 상태를 항상 확인하고 판정해 알람으로 직원에게 청소를 명령합니다.

사실 고객 입장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이 딱히 나쁠 건 없어 보입니다. 철저한 통제 덕분에 고객들은 전보다 더 청결하고 쾌적한 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해당 시스템 도입 후 직원들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청소상태를 확인하는 데 길들여지게 됐다고 합니다.

문제는 직원들입니다. 근무시간 내내 감시 아래 있어야 하는 상황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마치 절대권력을 쥔 AI에 복종하는 로봇 같다" "카메라가 손님이 아니라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 잠시 쉴 틈도 없다"는 등의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 들어 폐점 속출...반년새 700곳

폐점된 볜리펑 점포. [사진=바이두]
IT를 통해 사업을 확장해온 볜리펑이지만, 최근 경영사정이 안 좋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중국연쇄경영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700곳이 넘는 점포가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는 이와 관련한 증언들이 다수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공휴일에 문 닫은 점포가 눈에 띄더니 평일에도 오후 8, 9시면 문을 닫는 것 같다." "출퇴근 때 들르려 해도 문 닫은 점포가 많아 패밀리마트 등 다른 편의점을 이용하게 됐다." 이처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볜리펑 점포의 영업시간 단축 또는 폐쇄에 대한 목격담이 쏟아졌습니다.

편의점 운영이 어려워진 건 중국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도시봉쇄로 인한 내수 타격 여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만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편의점 업체들보다 볜리펑의 폐업 숫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 중국인은 웨이보에 "집 근처에 세븐일레븐하고 볜리펑이 많았는데 5월 이후 볜리펑만 2개 점포나 문 닫았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사측은 점포 폐점에 대한 소문에 대해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므로 일시적으로 영업을 정지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뭅니다. 중국 네티즌들뿐 아니라 중국 언론조차도 최근 볜리펑의 경영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감봉 페널티' 등이 직원 이탈 초래…기술발달의 명과 암

2019년 중국 푸젠성 푸저우에서 열린 디지털 전시회에서 안면인식 AI장비가 카메라에 비친 관객들의 신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볜리펑은 올해 초부터 직원들의 퇴직 러시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I에 의한 급여 삭감 페널티를 받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보수 관련 계약을 할 때와 이야기가 다르다"며 퇴직하는 이들이 대량 발생했다는 겁니다.

직원 수가 줄어들자 본사는 다른 점포에 있던 직원들을 일손이 없는 점포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새 점포의 상품 배치 등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들이 업무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AI가 감봉 페널티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볜리펑의 직원 수는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을 낳았고 일손 확보가 더 어려워지자 일부 점포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중국 현지 언론은 볜리펑이 무인 사업 시스템 운영을 전면 도입하기 이전에 시험 운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기간에 5년은 잡아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볜리펑이 AI 시스템을 통해 노무관리를 하려는 방향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지 모릅니다. 다만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업무 실수를 하나하나 급여 삭감과 연동시키는 건 지나쳐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중국에서 개인정보는 보호보다는 당국에 의해 효율적 관리와 통제 대상으로 쓰입니다. 시민사회 등 권력을 감시·견제할 장치가 없다시피 한 중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인구도 워낙 많아서인지 서방이나 한국에 비해 개인정보 보호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희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글로벌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Ipsos)가 매년 세계 30여 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중국인 90% 이상이 "자국의 기술을 신뢰한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답하는 비율은 매년 90%를 넘습니다. 중국인들이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침해에 상대적으로 무심하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하지만 최근 볜리펑의 직원 대량 이탈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입니다. IT 발달로 생활이 크게 편리해지고 있는 한편, 감시체제 등 이로 인한 부작용의 문제가 중국에서 편의점 운영과 관련해서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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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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