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쓰듯이' 쓸 수 있는 물은 없다 [우리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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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같다'는 말이 있다.
'인형 같다'는 말을 하는 또 다른 경우는 마론인형으로 알려진 바비인형을 떠올릴 때이다.
인형이란 사람의 모양을 본뜬 물체인데, 바비인형은 오히려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봇대처럼 키가 크다'는 말이 있지만,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요즘 누가 전봇대를 주목하는가? 정작 눈앞을 스치는 '살'을 본 적이 없는데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다'고 하고, 실생활에서는 네모난 쟁반을 더 많이 쓰면서도 '쟁반같이 둥근 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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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같다'는 말이 있다. 보통 예쁜 아이를 보고서 감탄사와 함께 내놓는 말이다.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은 아니지만, 요모조모 따져보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인형같이 예쁜 아이'에서의 기준은 주로 서양 아기의 용모이다. 우선 눈이 동그랗고 커야 하고, 피부가 뽀얘야 한다. 동양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찌 서양 아이를 닮아야만 예쁘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가?
'인형 같다'는 말을 하는 또 다른 경우는 마론인형으로 알려진 바비인형을 떠올릴 때이다. 1958년에 등장한 완벽한 몸매의 미인형이라지만, 현실감 없는 9등신을 보면 인형의 비유가 이상적인 상황을 뜻함을 확신하게 한다. 인형이란 사람의 모양을 본뜬 물체인데, 바비인형은 오히려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인형을 보며 자라 왜곡된 미 인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여, 어떤 나라에서는 사람의 특징을 살린 인형을 제작하여 어린이집에서부터 가지고 놀게 한다. 짝눈에 약간의 주근깨, 적절히 나온 똥배까지 진짜 사람을 닮은 인형인데, 이 아이들이 자랐을 때쯤이면 인형의 비유가 달라질지 궁금하다.
사람과 그림자마냥, 사람이 사는 곳에는 널리 통하는 비유가 있다. 그러나 영원한 비유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안 맞는 비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전봇대처럼 키가 크다'는 말이 있지만,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요즘 누가 전봇대를 주목하는가? 정작 눈앞을 스치는 '살'을 본 적이 없는데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다'고 하고, 실생활에서는 네모난 쟁반을 더 많이 쓰면서도 '쟁반같이 둥근 달'로 말한다.
사물의 변화로 속뜻이 바뀐 비유도 많다. '거울과 같다'가 그 예이다. 옛날 구리나 돌을 갈고닦아 거울을 만들던 때에는 '인생이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흐리니'가 적절했지만, 지금은 '꼭 거울을 보듯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는 선명함을 뜻할 때 적절하다. 특히 비유는 맥락 속에서 쓰여,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소한 것을 말할 때 '손톱만큼'을 쓰지만, 실제로 손톱은 건강 정보를 알려주고 손을 보호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손톱 밑에 가시만 들어가도 못 견디지 않는가? 돈을 함부로 쓸 때 우리는 '물 쓰듯이'로 빗대었다. 물은 더 이상 '물 쓰듯이' 하면 안 되는 존재이다. 지금은 물을 사서 마시지만, 어느 때가 되면 돈으로도 물을 사지 못할 것이다. 물 대란으로 허덕이는 지구를 보면 '물을 돈 쓰듯이'로 말할 날이 생각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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