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팁을 30% 달라니
“미국에서 수십년을 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지난 금융위기 때도 그런가 보다 했지, 남의 일인 줄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른 듯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거주하는 김모씨(61)는 30년째 한국인들을 상대로 생활서비스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막 미국으로 건너온 가족들의 이사를 도와준다든지, 혼자 지내는 유학생들의 통학과 소소한 살림을 챙겨주는 것이 김씨의 주된 일이다.
김씨는 환율 움직임에 따른 고객들의 고충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때도 그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한국 고객들은 원화 약세 탓에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단다. 원화는 폭락했고, 미국 내 물가는 급등했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자면 최악의 상황이다. 김씨가 한인 고객들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는 이유다.
김씨가 거주하는 보스턴 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 기름 값이야 글로벌 기준도 있고, 미국 전역의 평균 가격에 기초해서 움직이니 그렇다손 치자. 보스턴의 대표적 거주지인 브루클라인(Brookline)의 월 임대료는 1년 전과 비교해 1.3배가량 인상됐다. 이것도 기존 세입자에게 적용되는 얘기고, 새로 집을 임대하고자 한다면 작년보다 평균 1.5배 인상된 임대료를 내야 한다.(물론 팬데믹에 따른 기저효과 영향도 있다.)
폭등한 임대료에 지친 사람들이 집을 구매하겠다고 나서면서 브루클라인 주택 가격 역시 올랐다.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차라리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이자를 갚는 것이 임대료 상승 불안에 떠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주택이 나오자마자 달려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브루클라인에서 집을 구하기는 어려워졌고, 인근 뉴턴(Newton)이나 워터타운(Watertown) 등지로 사람들이 눈을 돌리면서 이 지역 집값도 덩달아 상승했다.
한국으로 치자면 소상공인들도 물가 상승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에는 팁 문화가 있다. 음식을 먹고 나면 음식값과 세금 이외에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준 직원들에 대한 답례로 팁(tip)을 지불한다. 도대체 얼마를 팁으로 줘야 하는지 계산하기 번거롭다 보니 보통 계산서에 15%, 18%, 20%, 22% 만큼의 팁이 얼마인지 표시돼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계산서에는 팁의 상한이 30%로 늘어났다. 100달러어치를 먹었다면, 음식값과 세금 이외에 30달러를 팁으로 내라는 얘기다. 물론 이 금액을 다 지불하지 않아도 되지만, 눈치는 보일 터다. 이를 두고 인건비 상승분을 팁을 통해 고객에게 전가하려는 업주의 꼼수라는 불만이 미국 내에서 커지는 상황이다.
며칠 전 발표된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기대와는 달리 1년 전보다 8.3%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이달에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미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때까지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조 바이든 정부도 이름부터 요상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을 내놓았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게 사람도 아니고, 법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겁을 집어먹고 당장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도 않겠지만, 그만큼 미 정부도 절박하다는 방증이겠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한국에도 고통이다. 미국 고물가로부터 촉발된 원화 약세 현상은 국내 주식 시장에 직격탄을 줬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400원에 육박했고, 이제는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사실 한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다.
이 상황이 나아지려면 미국에서 무언가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미국 내 분위기는 인플레이션이 잡힐 것이란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는 듯하다. 당장 코가 석 자라 거시경제를 걱정할 입장은 아니다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다. 찰스 다윈의 사촌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의 이론이 이렇게나 간절할 수 있을까. ‘극단적이거나 이례적인 결과는 많은 자료를 토대로 할 때 결국 평균에 가깝게 되돌아오는 경향을 보인다.’ 하루빨리 보통의 시간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과학영재교육 갈림길]② 의대 준비하러 대학 일찍 간 과학영재들, 조기진학제 손 본다
- [단독] 삼성전자, P2·P3 파운드리 라인 추가 ‘셧다운’ 추진… 적자 축소 총력
- [단독] 서정진 딸 관련 회사 과태료 미납, 벤츠 차량 공정위에 압류 당해
- [단독] ‘레깅스 탑2′ 젝시믹스·안다르, 나란히 M&A 매물로 나왔다
- “트럼프 수혜주”… 10월 韓증시서 4조원 던진 외국인, 방산·조선은 담았다
- 가는 족족 공모가 깨지는데... “제값 받겠다”며 토스도 미국행
- 오뚜기, 25년 라면과자 ‘뿌셔뿌셔’ 라인업 강화… ‘열뿌셔뿌셔’ 매운맛 나온다
- [인터뷰] 와이브레인 “전자약 병용요법 시대 온다… 치매·불면증도 치료”
- ‘꿈의 약’ 위고비는 생활 습관 고칠 좋은 기회... “단백질 식단·근력 운동 필요”
- 위기의 스타벅스, 재택근무 줄이고 우유 변경 무료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