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실세·핵관은 편히 잘 권리가 없다

정우상 정치부장 2022. 9. 1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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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했던 지난 정부 실세
조간 기사 보려 밤새우다 새벽 3시부터 비판 기사 항의
現실세들, 욕망은 보이지만 자기 희생과 열정은 안 보여
벼랑 끝 새우잠이 핵관의 숙명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로 새벽 3~4시쯤이면 눈이 번쩍 떠졌다. 이른바 ‘문핵관(문재인 정부 핵심 관계자)’ 때문이었다. 그는 신문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가는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수시로 기자에게 항의 또는 설명, 아니면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를 보냈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전화나 카톡 메시지를 놓쳤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어 휴대폰과 연동하는 스마트 워치를 손목에 차고 잠을 잤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그의 메시지에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사는 이미 인쇄돼 수정할 수는 없었지만 다음에 관련 기사를 쓸 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문재인 전 대통령 배웅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22.5.10 /대통령실 제공

위험 시간대가 지났다고 방심할 일이 아니었다. 오전 6시에는 실세로 불리는 국회의원이 다시 잠을 깨웠다. 이건 사실이 아니고, 저건 그렇고 하는 내용이다. 참 지독한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문핵관에게 물어봤다. 당신은 대체 몇 시에 잠자리에 드느냐고. 새벽 4시까지 조간신문 기사를 보고 오전 8시쯤 일어난다고 했다. 그들과는 여러번 충돌했지만, 그들의 열정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자에게 이 정도면 다른 분야에선 오죽했을까. 이런 열정과 극성이 정권을 지탱하고 있었다. 핵관과 실세들은 불면의 밤을 보냈겠지만 이런 참모를 둔 대통령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사고 수습도 빨랐다. 2004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며느리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노 대통령 가족사진을 싸이월드에 수십 장 올렸다. 새벽 5시에 전화를 건 청와대 대변인은 “나도 몰랐다”며 취재 과정을 물어봤다. 아침이 되자 인터넷에 올라간 사진들은 모두 삭제됐고, 오후에는 관련 청와대 직원을 징계했다. 참모들이 “며느리가 올린 사진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대통령이나 영부인에게 물어보고 시간을 끌었다면 ‘보안 사고’ 여파는 더 컸을 것이다. 그는 노 대통령 사후 몇 년간 건강 문제로 아무 일도 못 했다. 이 사건이 떠오른 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비공개 사진에 이어 경호 일정까지 김 여사 팬클럽에 먼저 공개되는 ‘보안 사고’에 대해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일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핵관, 실세 또는 핵심 측근으로 불리는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욕망이고 또 하나는 열정이다. 핵관들은 자신들의 권력으로 자리와 이권을 챙겼다.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저 사람은 누구 라인, 저 사람은 누구 라인이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사람들은 ‘캠코더 인사’ ‘회전문 인사’라고 했지만 핵관들은 “철학을 공유하는 분들을 모셨다”고 포장했다. 핵관이라는 자동차는 욕망과 함께 열정이라는 또 다른 바퀴로 움직인다. 열정은 때론 궤변으로, 때론 협박으로, 아주 가끔은 불법이라는 영역까지 넘나들었다.

박근혜 정부 핵심 관계자는 최근 윤석열 정부의 어려움을 보며 “정권에는 돌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권을 나누는 일에만 몰두하고 남에게 욕먹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꺼리는 핵관들에 대한 불만이었다. 핵관들의 욕망과 열정이 균형을 이뤄야 정권은 유지되고 공무원들은 정부를 위해 몸을 던진다. 그게 핵관과 실세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주변 실세들에게는 무슨 자리를 둘러싼 욕망은 아주 잘 보이는데 나를 던져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잘 안 보인다.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분명한데, 새로 건설할 질서와 목표가 무엇인지는 희미하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근 직원 조회에서 “여러분 모두 대통령이 되라”고 지시했다. 그는 “어디서 ‘짱돌’이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철저히 리스크를 점검해달라” “사명감을 갖고 일해달라”고 했다. 다음에 어디로 갈지만 신경 쓰지 말고, 이 정권의 명운이 당신들에게 달렸다는 주인 의식과 열정을 가져달라는 말이다. 실세와 핵관은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편안하게 잠잘 권리조차 없는 천형(天刑)이다. 대통령 측근들이 천길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으로, 뜬 눈으로 새우잠을 자야 나라가 평안하다. 왜 국민들이 정치 초보인 윤 대통령을 통해 정권교체를 하려 했는지 그 뜨거운 열망부터 다시 새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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