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횡재세

김홍수 논설위원 2022. 9. 1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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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橫財)를 뜻하는 영어 ‘Windfall’의 어원이 재미있다. 중세 시대 영국에선 숲의 주인들이 땔감을 얻기 위한 도둑 벌채를 엄격히 금지했다. 다만 폭풍에 쓰러진 나무를 주워가는 건 눈감아 줬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런 나무는 횡재나 다름없었다. 현대판 횡재 사냥꾼들이 캐나다에 있다. 캐나다 제재 업자들은 폭설로 숲 벌목이 어려울 땐 강물에 떠내려온 나무를 건진다. 20m짜리 삼나무 하나만 건져도 1만달러(약 1400만원)를 벌 수 있다.

▶1997년 영국 노동당은 집권 직후 횡재세(windfall tax)라는 이름의 세금을 새로 만들었다. 보수당 대처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많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됐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기업에 뒤늦게 횡재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렇게 조달된 1조원가량 세금은 복지 재원으로 활용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횡재세를 부활시켰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차단 등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한 유럽연합(EU)이 위기 극복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정유사, 발전회사 등에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기업의 3년 치 평균 이익의 20%를 초과하는 수익에 대해 33%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횡재세로 1400억유로(약 195조원)을 걷어 전기료·난방비 급등에 시달리는 가계,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횡재세는 과세권이 미치는 영토 내 자국 기업에 국한된다. 세계 4위 천연가스 수출국 노르웨이의 경우 석유·천연가스 가격 폭등 덕에 연평균 500억달러 수준이던 에너지 수출액이 2000억달러로 불어났다. 전 국민에게 1인당 4만달러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샘이 난 유럽 가스 수입국들은 노르웨이에 횡재세 대신 ‘할인 판매’ 선의라도 베풀라고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 주주들도 대박을 향유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55조원대 이익 덕에 특별 배당금을 두둑이 받았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정유사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간간이 나온다. 유가 폭등 탓에 한국전력이 올해 30조원이 넘는 적자를 낼 지경이니, 이런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만약 횡재세를 걷는다면 정유사 외에 은행과 가상화폐 거래소도 과세 후보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은행들은 물가를 잡기 위한 한국은행의 공격적 금리 인상 덕에 가만히 앉아 막대한 추가 수익을 거두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들도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엄청나게 풀린 돈과 그에 따른 코인 광풍 덕에 조(兆) 단위 이익을 누리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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