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 '꼬이직'.. 공무원들의 상복 시위에 험한 말 쏟아진 이유는

배준용 기자 2022. 9.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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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체된 공직 사회 한계 드러낸
공무원 임금 인상 논쟁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꼬우면 이직하든가.”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윤석열 정부의 공무원 보수 1.7% 인상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무원 노조는 급등하는 물가 등을 감안해 올해 임금 7.4% 인상을 주장했지만, 정부의 인상분이 이에 턱없이 못 미치자 시위에 나선 것이다.

특히 2030 공무원들이 시위의 주축에 섰다. 이들은 “정부안을 적용하면 내년도 9급 1호봉 급여는 171만5170원으로 최저임금 201만580원에도 부족하다”며 상복을 입은 채 ‘청년 공무원 노동자들의 청춘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자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싸늘하다 못해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각종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누칼협(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로 협박했느냐)’ ‘꼬이직(꼬우면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든지)’이 공무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조롱하는 유행어가 됐을 정도다. 이에 발끈한 일부 공무원들은 ‘누가 대한민국 국민 하라고 칼로 협박했느냐. 꼬우면 이민 가든가’ 같은 날 선 말로 받아치면서 논쟁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MZ도 국민도 만족 못하는 공무원 임금

공무원들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반응이다. 우선 젊은 공무원들의 박봉에 대한 불평은 “이해된다”고 입을 모았다. 2022년 공무원 봉급표에 따르면 올해 9급 일반직 공무원 1호봉의 기본급은 168만6500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들이 받는 공동수당을 포함해도 9급 공무원 1호봉의 올해 월평균 수령액은 약 215만원. 올해 중소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기본급이 약 241만원으로 추정되는 걸 감안하면 중소기업 신입사원보다 적은 기본급을 받고 있다. 한 노동 전문가는 “공무원 봉급은 세금뿐 아니라 공무원 연금 등 갖가지 공제가 많아 실수령액이 더 낮을 것”이라며 “최근 물가가 급등한 데다 결혼, 육아, 주택 마련까지 생각하면 더 답답한 심정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봉으로 인한 팍팍한 살림살이에 공직 사회 특유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 지친 2030들은 공직 사회를 이탈하거나 기피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지난해 퇴직한 공무원 4만4676명 중 5년 차 이하가 25%(1만1498명)를 차지했고, 숫자도 4년 전(5613명)에 비해 2배 넘게 늘었다. 2011년 93대1까지 치솟았던 9급 공무원 채용 경쟁률은 올해 29.2대 1까지 하락했고, 결시 등을 제외한 실질 경쟁률(22.5대 1)은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공직 사회 전반을 보면 공무원의 임금 수준은 절대 낮지 않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일반직 공무원의 기준소득액 평균액은 460만5376원. 2020년에는 461만1958원이었는데 이는 같은 해 대기업 근로자 월평균 소득인 529만원보다는 적지만 중소기업 근로자 월평균 소득 259만원을 크게 웃도는 액수다. 한 전문가는 “근로자 대부분이 중소기업 종사자인 걸 감안하면 공무원의 임금 인상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Z 공무원들의 박봉과 달리 공무원 평균 소득이 더 높은 건 호봉제와 수당 때문이다. 공직사회는 여전히 근속연수와 직급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지방직 공무원이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하는 데는 평균 6.1년, 국가직 공무원이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하는 데는 9년 1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처음에는 박봉이지만 근속연수만 채우면 호봉에 직급 승진까지 더해져 기본급이 빠르게 인상된다.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물가 상승률에 맞춰주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각종 수당도 많다. 매달 직급보조비 15만5000원에 정액급식비 14만원이 지급되고 반기별로 근속연수에 따른 정근수당, 명절에는 월급의 60% 상여금, 연 200만~400만원 수준의 성과상여금도 나온다. 이 외에 연평균 100만원의 복지포인트와 부양가족수당 등을 합치면 실수령액은 공무원 노조가 주장하는 액수보다 훨씬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 인상을 주장하려면 기본급 말고 원천 징수를 공개하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공무원 연금 역시 뜨거운 논쟁 거리다. 젊은 공무원들은 “전보다 연금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민간 근로자들은 “그마저도 부러운 줄 알라”고 반박한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의 1인당 월평균 노령연금 수령액은 53만원인 반면, 퇴직 공무원의 1인당 월평균 퇴직연금 수급액은 248만원으로 4.7배 높다. 한 전문가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적립 기금이 바닥나 매년 수조원의 적자가 발생, 국고로 수조원의 보전금이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많이 내고 많이 받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고용 안정성과 노후가 상대적으로 불안한 민간 근로자 입장에선 자신이 낸 세금으로 공무원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것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체된 임금·인사 체계 싹 바꿔야”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에 정체된 공직사회의 임금·인사 체계”라고 입을 모았다. 성과·직무와 동떨어진 호봉제와 근속승진 제도로는 공정한 성과·보상을 바라는 청년 세대의 요구에 부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공무원은 기득권’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는 공무원이 기득권 집단처럼 인식되고 있는 반면, 젊은 공무원들 입장에선 호봉 높은 공무원만큼 혜택을 받지도 못하면서 기득권으로 분류돼 비난을 받거나 여러 희생을 요구받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공직사회도 민간과 비슷한 직무급과 성과 중심의 인사 체계로 전환해야 젊고 유능한 인재를 유입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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