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軍, 이지움서 440구 집단매장했다”

런던/정철환 특파원 2022. 9.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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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 이어 또 집단 학살… 젤렌스키 “국제사회가 책임 물어야”
1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가 하르키우주 이지움에서 발견된 집단 매장지를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점령지마다 집단 학살과 고문을 저지르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4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매장된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수복한 이지움에서 비슷한 규모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인근 발라클리야와 볼찬스크 등에서는 민간인을 고문·학대한 흔적도 나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각) TV로 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최근 수복한 동북부 하르키우주 이지움에서 거대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차와 마리우폴에서 벌어진 학살이 이지움에서도 되풀이됐다”며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고, 내일(16일) 좀 더 명확하고 검증된 사실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러시아 군의 전쟁범죄는 낱낱이 밝혀지고 또 처벌되어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전범국인 러시아에 실질적 책임을 물어달라”고 말했다.

AP통신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이지움 점령 직후 주민들의 제보로 시 외곽의 숲속에서 집단 매장지를 찾았다. 17명의 우크라이나군 시신이 매장되었다는 표지판과 함께, 주변에 명패 없이 십자가로만 표시된 수백개의 다른 무덤들이 있었는데 그 수가 440여 개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군과 하르키우주 경찰이 시신을 발굴해 신원을 확인 중이다. 경찰 당국은 “발굴된 시신들은 상당수가 총에 맞거나 포격, 지뢰 등으로 숨진 사람들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러시아군의 잔혹 행위로 숨진 이들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또 “발라클리야와 볼찬스크 등 새로 수복한 도시들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과 포로를 잔혹하게 심문하는 데 사용한 ‘고문실’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예브헨 예닌 내무부 차관은 현지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비인간적 환경에 감금해 놓고 고문과 처형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망자 중에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대피하다 러시아군 검문소에서 잡힌 아시아 유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국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들은 인도 유학생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우크라이나 측 주장은 중립적 조사단에 의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사회 역시 즉각적 반응은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예닌 차관은 그러나 “전쟁범죄의 흔적은 우크라이나 군경이 철저히 기록 중이고, 국제형사재판소의 현장 조사팀도 조만간 합류해 조사에 나설 것”이라며 “과거 부차에서의 경험으로 미뤄 보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러시아 전쟁범죄의) 증거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점령지에서 우크라이나군에 러시아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협력자’를 색출하고, 주민들을 상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살해와 고문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러시아군이 퇴각한 부차에서는 거리 곳곳에 민간인들 시신이 널려있었고, 러시아군이 지휘소로 사용한 건물 지하에서 고문을 받고 살해된 시신 수십구가 발견됐다. 또 인근의 집단 매장지에서는 신체 일부가 잘렸거나 머리 뒤편에 총을 맞아 처형된 시신 수백구가 나왔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살자만 458명이다.

한편 하르키우에서 퇴각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집중된 돈바스 북서부(루한스크)에서 방어 태세를 강화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측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15일 “러시아군이 루한스크 북서부 스바토바와 트로이츠케에 참호를 파고 공세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또 14일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과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중부 크리비리흐의 댐을 타격했다. 이로 인해 댐이 일부 무너지면서 하류의 시가지가 범람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우크라이나 측이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댐의 긴급 복구에 나서 가까스로 재난을 피했다. 크리비리흐는 인구 65만명의 철강 도시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향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로 러시아에 대한 미국 기업의 양자 컴퓨터 기술 및 서비스 제공을 금지했다고 미국 CNN이 보도했다. 재무부는 또 러시아가 국제 금융 제재를 우회하는 데 도움을 준 2개 단체와 개인 22명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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