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내 아이와 남의 아이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나누어 생각한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가 나란히 어려움을 겪게 되면 내 아이 걱정이 우선이다. 내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며 아무리 엇나가더라도 무한한 사랑을 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내 아이 중심의 가족제도는 어딘가에 고립된 남의 아이가 있을 가능성을 끈질기게 외면한다. 이뿐만 아니다. ‘아이’를 특정한 가족관계에 종속된 소유물로 보는 한 그 아이는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어렵다.
오랜 옛날 서양 사람들은 요정들이 종종 요람에 잠들어 있는 예쁜 갓난아기를 훔쳐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흉한 모습을 지닌 요정의 아기를 남겨둔다는 것이다. 이렇게 뒤바뀐 아기를 일컬어 남자 아기는 샹즐랭, 여자 아기는 샹즐린이라고 불렀다.
프랑스 작가 마리 오드 뮈라이유의 동화 <요정의 아이 샹즐랭>은 태어나자마자 샹즐랭으로 지목된 한 어린이의 이야기다. 아기의 붉은 머리와 초록빛 눈동자를 불길하게 여겼던 부모와 이웃들은 “이 아이는 샹즐랭일 거야”라고 믿어버리는 것으로써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려고 했다.
남의 아이로 여겨져 버려진 샹즐랭을 눈여겨보고 거두어들인 것은 성주의 아내였던 로자몽드 부인이다. 샹즐랭은 그의 돌봄을 받는다. 하지만 몹시 몸이 약했던 부인은 여자 아기 아리안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어린 샹즐랭에게 자신의 딸 아리안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샹즐랭은 로자몽드 부인이 남기고 간 그의 ‘내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그림자처럼 최선을 다한다. 부인의 아이, 아리안은 자라날수록 남달랐다.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을 좋아했고 유난히 독립적이었다.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성주의 명령을 거부하고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우겼다. 복잡한 음모의 희생양이 될 뻔한 아리안은 샹즐랭의 기지 덕분에 살아남는다.
이 동화에서 샹즐랭은 자신을 ‘남의 아이’로 여기지 않고 돌봐준 로자몽드 부인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자신처럼 차별받는 ‘작은 사람들’은 ‘눈을 절반 남짓 감은 사람들’ 앞에만 모습을 나타낸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눈을 절반 남짓 감았다는 말은 틀에 갇힌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 동화에 따르면 내 아이만 뚫어지게 보는 사람들은 눈을 떴더라도 눈을 질끈 감은 것과 다름없다. 책에서는 샹즐랭이 진짜 요정의 아이인지, 요정으로 오해받은 사람의 아이인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샹즐랭이 끝까지 간직하는 비밀이 하나 있다. 로자몽드 부인이 세상을 떠나며 간곡하게 부탁했던 그의 ‘내 아이’, 아리안은 정작 요정의 여왕이 바꾸어놓고 간 ‘남의 아이’, 샹즐린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동화는 한 사람이 인간인지 요정인지, 내 아이인지 남의 아이인지 구분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잘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동화작가 김진경은 2022년 비룡소문학상 심사평을 통해 이 위기의 세계에서 동화의 혁신을 말한다. “한국의 어린이 서사문학은 한국 사회를 가장 밑바닥에서 왜곡시키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를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전통적 핵가족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가정이 10%를 넘기기 어려운 오늘의 여건을 직시하자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핵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강변하면서 나머지를 루저로 만들고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넘기는 현실을 비판한다. 아동문학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보호 종료 청소년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내 아이 돌보기에도 힘겨워서 그들의 고통을 몰랐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다음 세대의 삶을 두루 살피는, 눈을 절반 남짓 감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의 아이들은 모두 샹즐랭과 샹즐린이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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