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대신 잘라주는 서비스로 매출 2000억 원 앞둔 30살 사장[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2022. 9. 17. 0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귀금속 거래 플랫폼 개발-운영 '금방'
블록체인 기술로 金거래에 혁신
창업 3년만에 매출 2000억 급성장

귀금속 거래 플랫폼 ‘업스토어’를 운영하는 회사 ‘금방’의 임진리 대표이사가 자사의 업스토어 앱과 금을 들고 업스토어의 배송 택배함 앞에 섰다. 업스토어 덕분에 귀금속 업계는 결제용 금을 일일이 잘라서 세공업체에 건네지 않고, 완제품을 멀리서 더 손쉽게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금은방에서 금 장신구를 주문하면 소비자는 잘 모르는 독특한 거래 과정이 시작된다. 금은방 뒤에는 도매상이, 그 뒤에는 귀금속 세공업체가 있다. 소비자가 고른 디자인을 금은방은 도매상에 주문하고, 도매상은 다시 세공업체에 주문을 넣는다. 이후 거래 과정이 여느 제품의 유통 과정과 차이가 있다. 작품이 완성되면 세공업체는 도매상에 물건을 찾아가라고 알린다. 이때 도매상은 주문한 장신구의 금 무게와 비슷한 금 덩어리와 세공비, 두 가지를 준비해서 세공업체를 찾는다. 두 업자는 만난 자리에서 완제품의 무게를 소수점 아래 두 자릿수까지 잰다. 그 뒤 도매상은 그 자리에서 원재료인 금을 잘라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릿수까지 정확하게 맞춰 건넨다. 결제에 쓰이는 이런 금은 ‘결제금’으로 불린다. 세공비는 별도로 돈으로 지불한다. 도매상이 가져 온 완제품을 금은방에 넘길 때도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금은방 알바에게 이상했던 풍경

금방의 ‘업스토어’ 서비스는 귀금속상들이 결제금을 자르는 수고를 디지털로 전환하고, 세공업체에 갈 금만 업스토어에서 잘라 줌으로써 거래 편의성을 높였다.
‘금방’의 임진리 대표이사(30)는 대학 시절 어머니 금은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금 장신구 업계의 실물 거래 관행을 알게 됐다. 도매상에 물건을 찾으러 가다가 금을 분실해 알바비로 그 손해를 감당하면서 실물 거래의 위험성을 체감했다. 금을 잘라줄 때도 정확한 무게를 맞추기 위해 모래알만큼 작게 자르느라 시간과 노력이 적잖게 들었다.

임 대표는 “해외로 돈을 보내는 것도 앱으로 편리하게 처리되는 디지털 시대에 장신구용 금이 아직껏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 그때 사업 기회를 본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실물 금 거래 관행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금값에 의한 손익을 없애기 위해서는 원재료인 금을 실물로 주고받아야 했던 관행이 귀금속 업계가 생긴 뒤로 바뀐 적이 없었던 것이다.

건국대 생물공학과 졸업을 앞두고는 취직보다는 창업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 창업을 위해서는 소프트웨어(SW) 기술이 필수라고 여겨 삼성멀티캠퍼스에 어렵게 입학해 코딩을 배웠다. 컴퓨터 관련 전공이 아니어서 6개월 과정 중 4개월가량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매일 울다시피 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쉽게 풀이한 강의를 접하고는 교육 과정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코딩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키우게 됐다.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블록체인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고, 한국산업기술대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 강사까지 지냈다.
○5만여 귀금속 제품 소개하는 ‘업스토어’

코딩에 자신이 붙자 금은방 알바를 할 때 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3월 창업했다. 처음엔 혼자였다가 정부지원금을 바탕으로 개발자 2명을 채용해 3명으로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할 무렵인 2020년 3월 ‘업스토어’라는 서비스를 앱으로 내놨다. 금은방과 도매상이 앱에서 금을 사 보유하고 있다가 주문품을 주고받을 때 앱에서 금을 이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다. 세공업체는 앱에서 이체 받은 금을 임 대표의 회사로 찾아와 실물로 찾아간다. 소매상과 도매상은 결제금을 자를 일이 없어진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아껴주고, 절단 과정 중 발생하는 금 손실을 방지해 주며, 육안으로는 분간하기 힘든 함량인 금을 받을 위험성도 줄여준다. 먼 거리 간 거래도 더 편리하게 해 준다.

전국에는 1만2000여 곳의 금은방과 2000여 곳의 도매상, 1000여 곳의 세공업체가 있다. 임 대표는 앱 출시 후 금 거래가 앱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전국을 돌며 가입을 부탁했다. 금은방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3가 일대는 물론이고 지방 귀금속 상가까지 직접 찾아가 50, 60대의 금은방 주인들에게 앱이 제공하는 이점과 사용법을 일일이 설명했다. 더 많은 디자인의 제품을 한 번에 볼 수 있고, 소비자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실물 금을 옮기고 자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가입자가 조금씩 늘었다. 임 대표는 “기존 거래 과정은 지켜드리면서 편의성을 높여 전국 귀금속 사업자의 37%인 5600여 곳이 업스토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서비스 출시 2년 6개월 만에 업스토어는 국내 귀금속 제품 목록을 가장 많이 갖춘 곳이 됐다. 귀금속을 3300여 가지로 분류해 두고 5만여 제품을 소개한다. 다이아몬드도 1400여 종이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금은방과 도매상에 금을 파는 데서 나온다. 금을 민간 금 유통기업인 금거래소에서 도매금액으로 매입해 이를 판매하면서 약간의 수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서비스 시작 이듬해인 2021년에 19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000억 원을 올렸다. 매출이 급격히 늘면서 취재가 있던 지난달 31일 종로세무서에서 조사를 나올 정도였다. 임 대표는 “올해 2000억 원 매출을 예상하고, 영업이익은 2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내년에는 KRX 금시장에 금 공급 자격

디자인 회의를 하고 있는 금방(주)의 직원들
금방은 금 유통량이 많아지면서 금 시세를 자체적으로 조사해 매일 업스토어 앱에 공지하고 그 가격에 금은방들에 판매한다. 매입 규모가 커지면서 금을 싸게 공급할 수 있게 되니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임 대표는 내년에는 매출이 8000억 원대로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 대표는 “금을 수출하고 수입할 수 있는 자격은 획득했고, 내년이면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 금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도 얻게 된다”고 했다.

올해는 대부분의 매출과 이익이 결제금을 대신하는 디지털 송금 서비스에서 나왔지만 내년에는 도매업체나 세공업체의 귀금속 상품을 플랫폼을 통해 금은방에 판매하는 서비스를 더 고도화해 수익을 다각화할 예정이다. 임 대표는 “귀금속을 온라인상에서도 실제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렌더링 기술을 보강해 실제 제품을 만들지 않더라도 금은방이 귀금속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 시장을 키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관련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 인수도 추진 중이다.
○“장롱 속 금에 수익 지급하는 서비스도 만들 것”

국내에 있는 금은 KRX 금 시장을 통해 개인이 보유하는 19t(1조5000억 원어치)과 귀금속 시장을 통해 개인이 보유하는 700t(50조 원어치)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금고나 장롱 속에 오랫동안 묵히는 경우가 많다.

임 대표는 한정된 자원인 금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거래를 활성화하는 B2C 서비스를 내년 중 선보일 계획이다. 개인들 간에 금 거래를 중개하고 정련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개인들이 장롱 속에 보관 중인 금을 전국 금은방을 통해 빌린 뒤 이를 활용해 장신구 등을 만들어 팔고 남은 수익을 돌려주는 서비스도 만들 계획이다. 장롱 속 금에 이자를 붙여주는 셈이다. 개인 간 거래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시킬 생각이다. 앞으로 할 B2C 서비스를 위해 SW 개발자를 비롯해 운영에 필요한 인재들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임 대표는 “한정된 자원인 금의 활용도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세계적인 투명한 금 거래 플랫폼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소비자는 굳이 음성적인 거래를 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손쉽게 믿을 만한 금을 싸게 구입·투자할 수 있고, 귀금속 업계는 ‘탈세’ 같은 어두운 시선에서 벗어나 귀금속 산업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