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정부는 기후위기 비상체제를 가동하라
인류는 세 종류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첫째는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인류의 패싸움, 둘째는 불가시적인 바이러스에 대한 총력전, 셋째는 제임스 러브록이 말한 것처럼 <가이아의 복수>에 대항하는 전면전이다. 이 모든 전쟁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패싸움과 총력전은 형태가 다를 뿐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인류멸종에 가까운 기후위기가 시시각각 삶을 조여 오고 있다. 200여년 동안 짝을 이룬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대로는 문명의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금년 ‘중대한 기후 시스템들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위험신호’라는 주제의 호주 보고서에서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연쇄작용이 곧 닥칠 것 같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1.5도는 탄소배출 경로와는 관계없이 2030년경 도달할 것이며 몇몇 임계점들은 이미 도달했다”고 한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은 높아져 수억명의 기후난민을 양산할 것으로 본다. 죽기 전에 내가 사는 익산도 물에 잠길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다. 이 체제는 실패했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아 수만년 전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공중으로 확산되듯 잠복했던 인간의 욕망은 노동의 잉여가치에 맛들이면서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인간의 노동을 포획한 자본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하듯 농업과 자연까지도 자본화해 싹쓸이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무한 순환을 위해 제국주의로 자원을 수탈하고, 전쟁을 일으키며 욕망을 위한 욕망의 체제를 구축했다. 이제 인간의 지식과 사고마저도 자본화하고, 상상력과 눈물까지도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공존하는 이웃 생명체들도 자본의 발굽 아래 소멸되고 있다. 지구 전체를 착취하고 소비할 때까지 질주할 것이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존재자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파편화된 인간은 탐욕의 존재자로서 자신의 뒤에서 감싸고 있는 고향인 존재의 신비성, 절대성, 경이로움을 잃어버렸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들이나 동양의 현자들은 자연(自然)이라는 말 뜻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의 전일적인 세계를 인식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만물을 낳는 어머니를 도라 하고, 이 도가 만물을 기르는 것을 덕으로 보고 이를 도덕(道德)이라고 한다. 존재자를 통합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존재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에 이 대자연인 지구가 있다.
이를 타자화한 인간은 자신의 모태인 지구에게 욕망을 투사하며 거덜내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에 대한 지구의 반격이다. 인간에겐 태풍, 기근, 산불, 홍수가 천재지변이지만, 지구는 자기 평형을 위한 뒤척거림일 뿐이다. 인간은 이 안식의 고향을 상실한 탕자에 불과하다. 스스로 방황하고, 학대하고, 멸종의 구렁텅이로 직진하고 있다. 인류의 멸종이 이루어져야 어쩌면 지구는 다른 생명에게 자신을 위탁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리셋 중이다. 그것은 무자비가 아니며, 수십억년 동안 해온 일이다.
따라서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위기다.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가 2007년 기후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만든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는 미지근한 실험그릇에 들어앉아 있는 개구리가 나온다.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도 뛰쳐나갈 생각이 없는 개구리는 그대로 죽는다. 같은 이야기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웅덩이에 모여 있는 올챙이가 졸아드는 물을 보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말로만 하는 모습이 바로 인간이다. 며칠 뒤면 물이 완전히 말라버릴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자연재해의 강도가 세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어리석은 인류의 멸종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얼 망설이는가. 명백한 위기 앞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기후위기 비상체제를 꾸려야 하지 않겠는가.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거국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존망에 관계된 국가안보의 문제다. 2019년 9월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는 기후위기의 진실을 인정하고 비상상황을 선포할 것,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을 시작할 것, 기후위기에 맞설 범국가기구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하는 시늉만 냈지 진실한 자세로 대하지 않았다. 바뀐 새 정부는 오히려 퇴행적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절망의 먹구름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모두 광장으로 뛰쳐나가 기후혁명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국난 때마다 그러했듯 결국 백성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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