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살인범과 함게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

허연 2022. 9. 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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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카포티 (1924~1984)
"냉혈한들 때문에 그는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살인범과의 대화로 베스트셀러 만든 美 작가
"책 제목을 '인 콜드 블러드'라고 지었다고요. 범죄자를 뜻하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을 가리키는 건가요?"

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먼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카포티'에 나오는 명대사다. 살인범들의 이야기를 쓰는 주인공 소설가가 책 제목을 '냉혈한(In Cold Blood)'이라고 정했다고 하자 경찰 간부가 던진 말이다.

영화 '카포티'는 작가 트루먼 카포티가 논픽션 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불리는 '인 콜드 블러드'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기자인 카포티는 캔자스주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처음에는 기사를 쓸 요량이었지만 범인이 잡히면서 카포티는 점점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소설로 만들 결심을 한다. 카포티는 아무 이유 없이 일가족을 살해한 범인 2명과 대화를 시작한다. 카포티는 살인범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연민을 느끼고, 살인범들도 카포티에게 정서적으로 기대게 된다. 그러나 카포티의 목적은 결국 하나뿐이다. 소설을 멋지게 완성해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다. 카포티는 소설의 제목은 물론 진행 과정을 살인범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이 자극을 받아서 사연을 털어놓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소설이 완성되자 카포티는 그들이 빨리 사형대에 오르기를 기다린다. 소설 출간 때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경찰 간부가 '네가 냉혈한인지 살인범들이 냉혈한인지 모르겠다'는 뼈 때리는 말을 던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완성된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카포티는 논픽션 소설의 대가가 된다.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 예술작품의 창조에 있어 '대상화'는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전쟁 사진을 찍는 종군기자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긴박한 전쟁터에서 셔터를 누를 것인가 1초라도 빨리 달려가서 그들을 구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시달린다.

자신의 아픈 가족사를 소설로 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집단의 비극을 객관적 시각으로 봐야 할 테니 말이다.

카포티는 잔인할 정도로 삶의 민낯에 집착하는 작가였다. 그의 예술관이나 창작 방법을 놓고 선악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그가 놀라운 작품을 많이 남긴 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단편 중 '불행의 대가'라는 게 있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모든 일들 중에서도 가장 슬픈 건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진짜 이유다. 사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곱씹어보면 참 뛰어나면서도 잔인한 통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삼류 사기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신문사 심부름꾼으로 살던 똑똑한 소년에게 삶은 해부해보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카포티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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