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스타일에 안 맞는 이승우, 강태공처럼 때 기다려야
[스포츠 오디세이] 축구대표팀 승선 못한 비운의 스타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3일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이번 팀은 9월 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과의 친선경기에 나선다. 두 차례 평가전 이후 해산한 뒤 카타르 월드컵(11월 20일 개막)에 맞춰 대표팀을 소집하기에 이번 명단은 사실상 카타르에 갈 멤버를 뽑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벤투는 고집이 세다. 그는 자신의 축구 스타일을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간다. 빌드업(수비에서부터 공격 작업을 만들어 가는 것)과 볼 점유율을 신봉한다. 자신의 전술 틀에 맞춰 선발한 선수는 좀체 바꾸지 않는다.
축구팬들이 “언제까지 안 뽑는지 보자”고 했던 선수가 둘 있다. ‘스페인 유학파’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강인(21·마요르카)과 이승우(24·수원FC)다. 벤투는 이강인을 불렀고, 이승우는 부르지 않았다. ‘슛돌이’ 이강인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최근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강한 인상을 심었다. 올 시즌 K리그로 복귀한 이승우도 화려한 개인기,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하는 슈팅력을 과시하며 30경기 13골로 득점 3위에 올라 있다. 벤투와 이승우의 ‘엇갈린 만남’에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축구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었다.
직선적 플레이 스타일, 벤투와 안 맞아
이승우의 폼이 워낙 좋다는 건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하는 일부 대표선수보다 우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이승우가 잘하는 건 맞지만 범접할 수 없는 메시급은 아니지 않나. 축구는 11명을 갖고 13명의 효과를 낼 수도 있고 9명 정도밖에 못할 수도 있다. 그게 감독의 용병술이다. 이를 위해 압도적인 자원이 아니라면 희생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강인은 어떻게 재승선 할 수 있었을까. 지난해 3월을 마지막으로 이강인은 벤투호와 떨어져 있었다. 축구인 A씨는 “당시 일본전에서 벤투가 이강인을 제로톱(스트라이커 대신 미드필더가 최전방을 오가는 전술)으로 썼는데 0-3으로 완패했다. 경기 후 라커룸에서 이강인이 감독의 전술 실패를 강한 어조로 지적했는데 그게 벤투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박문성 위원은 “이강인은 약점으로 지적됐던 볼 처리 속도가 빨라졌고, 힘을 키워 몸싸움을 견디고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는 변화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한준희 위원은 “이강인이 벤투 스타일에 최적화된 선수는 아니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고, 중원에서 볼 간수, 왼발 세트피스 등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승우 입장에서 보자. 그는 동아시안컵(7월 19~27일·일본) 대표팀 선발을 앞둔 6월에 환상적인 골을 잇달아 터뜨려 ‘이달의 선수’에 뽑혔다, “체력이 약하고 수비 가담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악착같이 수비를 하는 모습도 보여줬고, 실제 볼 탈취 기록도 좋았다.
그런데 유럽파 없이 K리거 중심으로 구성한 대표팀 명단에도 이승우는 없었다. 대신 소속팀에서 이승우의 백업 자원인 이기혁(22·수원FC)이 선발돼 동아시안컵 홍콩전에서 풀타임을 뛰었다. K리그에서 교체 카드 5장을 다 쓰기 위해서는 22세 이하 선수 2명을 기용해야 한다. 선발로 나와 잠깐 뛰다가 주전과 교체되곤 하는데 이기혁이 주로 이런 역할을 맡았다.
벤투, 한번 마음 준 선수는 끝까지 고집
이승우는 벤투 부임 초기인 2019년 1월 아시안컵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자 감독이 보는 앞에서 물병을 걷어차고 정강이 보호대를 집어던졌다. 이 사건 이후 이승우는 벤투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축구계 인사 C씨는 “벤투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권위가 침해되는 걸 본능적으로 못 참는 성격인 것 같다. 포르투갈 대표팀(2010~14)을 맡았을 때도 루이스 나니가 ‘너무 호날두 위주로 대표팀이 운영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을 하자 그를 대표팀에 뽑지 않았다. 전술을 놓고 선수와 격론을 벌이기도 하는 유럽 지도자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마음을 비운 것 같다. 대표팀 명단 발표일에 두 골을 터뜨린 뒤 기자회견장에서 대표팀 관련 질문을 받자 그는 “좀 아쉽죠. 그게 다입니다”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이승우의 측근은 “승우가 벨기에 신트트라위던(2019~21)에 있을 때도 그를 데려온 구단주와 감독의 갈등 때문에 연습경기에서 골을 펑펑 터뜨리고도 리그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마음고생을 하면서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체육철학자인 김정효 서울대 교수의 조언을 그에게 전하고 싶다. “이승우의 플레이에는 창의적으로 경기를 지배하고 마무리까지 하는 천재성이 보인다. 반면 벤투는 레고 블록을 쌓듯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다. 감독과 합이 맞지 않는다면 선수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문왕이 나타날 때까지 강태공은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고, 유비가 삼고초려 할 때까지 제갈량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천재성과 항심(恒心·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이 합쳐진다면 이승우는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
■ 브라질 축구 스타 호나우두, 동료였던 둥가 감독에게 외면당해
대표적인 게 2002 한·일 월드컵 득점왕 호나우두(브라질·사진)다. 그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리그 38경기에서 23골을 넣으며 ‘남아공에서 멋지게 선수 생활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다’는 목표를 품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 둥가는 그를 외면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등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를 다시 선수로 뽑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이탈리아의 ‘꽁지머리’ 로베르토 바조도 비슷한 경우다. 1994 미국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해 브라질에 우승컵을 넘겨줬던 그는 2002 월드컵에서 선수 생활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자 했다. 그러나 본선을 몇 개월 앞두고 큰 부상을 당했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일어섰지만 트라파토니 감독은 “완전한 몸이 아니다”라며 그를 외면했다. 이탈리아는 16강전에서 한국에 1-2로 역전패하며 짐을 쌌다. 바조를 뽑지 않은 감독은 엄청난 욕을 먹었다.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레돈도는 좀 특이한 경우다. 테크닉이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그는 파사레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감독은 레돈도의 장발 스타일에 불만이 많았으며, 대표선수들에게 단발령을 내렸다. 이를 거부한 레돈도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 가지 못했다. 마라도나는 당시 “레돈도를 제외한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감독을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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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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