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69] 일인분의 삶
2010년 윤고은의 소설 ‘1인용 식탁’의 주인공은 식탁을 공유하지 못하면 농담도, 더러 진담도 공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다. 점심시간에 홀로 남겨지는 게 괴로웠던 그녀는 결국 ‘혼밥’의 기술을 전수하는 학원에 등록한다. 졸업률이 15퍼센트라는 이 학원은 혼밥 레벨을 5단계로 구분했는데, 1단계가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라면, 중간 단계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 최고 난도는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 구워 먹기다.
하지만 이제 ‘혼밥’은 외로움의 상징이 아니다. 1인 가구 역시 40퍼센트를 돌파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우리는 외로움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에만 집중하는 현대적 풍경을 발견한다. 요즘은 일행이 여럿이면 식당의 1-2인용 테이블을 붙여야 할 때도 많다. 혼밥은 혼술이나 혼영(혼자 영화 보기)처럼 다양한 분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일인분의 삶’이 가능해진 건 기술의 도움이 크다. 코로나 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무인 점포는 더 이상 대면하지 않는 삶에 우리가 철저히 적응한 결과다. 이제 ‘혼자’의 의미는 외로움에서 편리함과 효율성으로 바뀌고 있다. 단골 카페의 주인이 말을 걸던 날,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MZ세대는 대면을 어려워하고 익명성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여기에 있으면 저기를 꿈꾸는 게 인간이다. 현실이 외로우면 온라인에서라도 우리는 연결되기를 꿈꾼다. ‘1인용 식탁’에 등장하는 혼밥 학원의 졸업률이 불과 15퍼센트인 것도 학원을 졸업하면 ‘혼밥’의 외로움을 공유하던 ‘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혼밥 현상 뒤에 ‘홈파티’ 문화가 생기고, 함께 밥을 먹거나 같이 달리는 모임이 계속 생기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혼자 있으면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으면 혼자이고 싶은 우리에게 필요한 거리는, 골딜록스는 어디쯤일까. 다가가면 아프고, 멀어지면 외로운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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