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아름다운 조연, 그대가 진정한 위너입니다
햄릿의 무덤파기 역할이어도
오케스트라서 작은북 맡아도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다워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경희 작가의 ‘현이의 연극’이라는 수필을 오래 기억한다. 아이의 연극 공연을 보려고 공연장을 찾은 엄마의 시선으로 쓴 글이다. 엄마는 설렌 마음으로 공연을 보게 되는데 아이의 역할은 공연 내내 무대 뒤에서 풀잎 모형을 흔들고 있는 ‘풀잎’ 역이었다. 근사한 주인공 역할을 기대했던 엄마는 실망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자신이 연극에서 실수한 것을 알게 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짠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격려하게 된다. 이렇듯 부모는 늘 자신의 아이가 주연이기를 바란다. 어떤 장소에서든 주목받는 아이이고 인생 전부를 그렇게 살 수 있게 기도한다.
전 세계적으로 7000만부 이상 팔린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에도 아름다운 조연이 등장한다. 오케스트라에서 작은북을 치는 단원인데 한 곡에서 단 두 번밖에 없는 북 치는 기회를 전혀 지루한 기색 없이 기다리는 사람이다. 주인공 콜필드는 그를 예수께서 진정으로 좋아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손이 쉬고 있을 때도 긴장을 놓지 않으며 그러다가 북 치는 차례가 되면 심각한 표정을 하고 매우 멋지고 아름답게 북을 울려댔다. 소설 속 16세 소년인 콜필드의 눈에 비친 이 멋진 조연을 우리는 오래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인 문화심리학자 이누미야 요시유키는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이라는 책에서 한국인에게는 자신이 주연이 되어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체성 문화의 특성이 있다고 했다. 이런 지적은 우리를 좀 더 유연한 사고로 이끌게 하여 조연이지만 주역으로 사는 지혜를 생각하게 한다. 무대 배경 중 일부인 풀잎 역할이어도, 연극 햄릿의 무덤파기 역할이어도, 오케스트라의 작은북 연주자여도 각자의 인생에선 모두가 주역이다. 눈에 띄지 않는 역할을 맡아도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건강을 챙기는 것 또한 주역의 삶을 사는 최선의 노력이라는 의미에서 최근에 나는 탁구를 시작했다. 예전에 단순히 승부에만 집착했던 자신을 바로잡아야 하니 기본자세부터 다시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경기할 때면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다던 자세는 흐트러지고 경기의 승리에만 혈안이 된다. 승자만이 주역이 될 수 있다는 무의식 속의 이런 비장함이 탁구를 더욱 망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 탁구장 벽면에 걸린 푸른 플래카드는 잠깐의 욕망에서 깨게 한다. “과욕으로 얻은 승리보다 웃음으로 패배를 인정하는 그대가 진정한 위너입니다.”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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