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평론가의 세대 뛰어넘은 사유[책과 삶]

오경민 기자 2022. 9. 16. 21: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한영인 지음
안온 | 452쪽 | 2만원

시인 장정일이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84년, 경남 진해에서 평론가 한영인이 태어났다. 제주에 살던 둘은 2020년 7월31일, 소설가 K의 주선으로 애월에서 만났다. 둘은 각자의 배우자, 파트너와 함께 넷이 어울리는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한영인은 ‘사람을 잘 사귀지 않는 데다가, 나이 들어 사람을 새로 사귀는 건 더욱 어려운’ 장정일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사귄 친구’가, 장정일은 한영인에게 ‘장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가 됐다. 장정일이 예정보다 일찍 제주를 떠나 서울로 갔다. 장정일은 스마트폰은 물론 2G폰도 없다. 둘은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1년여간 주고받은 총 24통의 편지를 엮은 책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가 출간됐다. 한영인은 장정일을 ‘선생님’, 장정일은 한영인을 ‘형’이라고 칭한다.

두 사람은 다양한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말이나 생각을 눙치지 않고 벼려온 이들이 만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영인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선생님과 저는 상이한 입장과 관점으로 인해 서로를 부정해야 했고 그 대립 과정에서 저의 정신은 비슷한 입장을 지닌 사람들과의 느슨한 일치에서 맛볼 수 없던 어떤 힘에 종종 사로잡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의 주제는 문학 작품, 뉴스, 일상을 넘나든다. 진지한 대화 속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혼자 쓴 글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 서로를 향한 편지에서 엿보여, 저자들이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가까운 시대의 작품과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제공하는 반가운 책이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