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난민 엄마, 미국 태생 아들..함께 읽는 동화, 언어 초월한 사랑의 힘[그림책]
매직 피시
쭝 레 응우옌 지음·박다솜 옮김
창비교육 | 256쪽 | 1만7000원
“동화는… 바뀔 수 있어. 마치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베트남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인 소년 ‘티엔’과 티엔의 엄마 ‘헬렌’은 매일 저녁 함께 동화를 읽는다. 함께 책을 읽지만 모자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다. 미국에서 태어난 티엔은 영어가 익숙하지만, 엄마 헬렌은 그렇지 않다. 동화 읽기는 영어가 서툰 엄마를 위한 아들의 일과이자, 공통의 언어가 없는 모자가 소통하는 징검다리인 셈이다.
언어를 초월하는 사랑의 힘에 대해 그린 그래픽 노블 <매직 피시>에는 세 편의 동화가 담겨 있다. 엄마와 아들, 이모와 조카가 서로에게 들려주는 동화 속 이야기는 문화권과 언어가 달라도 공통된 정서를 바탕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원래의 결말과 달리 새롭게 해석되기도 한다.
모자에겐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각자의 고민이 있다.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헬렌은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나서야 고국 땅을 밟는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모국어를 잊어가며 자신도 잃어가는 듯한 상실감,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동화의 결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의 두려움은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아들과도 멀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미국으로 향하던 난민 보트 안에서 자신이 죽은 것 같다며 “아직도 망망대해를 떠도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헬렌에게 이모는 동화 속 이야기가 변하듯 모든 것은 변한다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로 쓰면 된다고 위로한다.
티엔 역시 털어놓기 어려운 비밀이 있다. 동성 친구 줄리안을 좋아하는데,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베트남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점이 그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티엔이 하지 못한 말을 이미 알고 있는 헬렌은 말 대신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준다.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해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 공주가 아니라, 왕자가 좋아한 이웃나라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새로운 결말의 <인어 공주> 이야기다. 헬렌은 서툰 영어 대신 동화를 통해 “엄마는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해”라는 진심을 전한다.
작가 쭝 레 응우옌의 데뷔작이자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이 책은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2021년 하비상 ‘올해의 책’과 ‘최고의 아동·청소년 책’을 수상하는 등 호평받았다. 응우옌은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가 현실에서 어떻게 탈출구인 동시에 닻이 될 수 있는지 탐구하고 싶었다”며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소외라는 주제가 갖는 무게를 덜어내고 우리 삶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썼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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