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었다..행동해야 한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김송이 기자 2022. 9. 1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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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인' 현장에서 SNS까지 휘몰아치는 애도와 연대 목소리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꽃을 놓고 있다. 권도현 기자
신당역 역사 내부 추모공간
고인의 넋 기리는 조화 쌓여
민주노총, 조문 뒤 침묵 시위
SNS에는 ‘#신당역’ 추모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는 사건 발생 사흘째인 16일에도 이어졌다. 신당역사 한편에 차려진 추모공간에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조화들이 수북이 쌓였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때 분노와 슬픔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했던 것처럼 각계의 연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30분쯤 사건 피해자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사건 발생 장소인 서울 중구 신당역으로 이동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35명가량의 참석자들은 검은색 테이프를 엑스(X)자로 만들어 붙인 마스크를 쓰고 신당역까지 걸었다. 이들은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일하다 죽었다’ ‘여성폭력 없는 일터’ 등이 쓰인 피켓을 들고 침묵 속에 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터였던 서울교통공사에도 ‘예방할 수 있었던 폭력을 책임지라’고 촉구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서울교통공사는 피해자의 안전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공사는 이 사건이 산업재해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막을 수 있었고, 살릴 수 있었다”며 “서울교통공사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루트를 차단했어야 한다”고 울먹였다.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는 이날 이른 시간부터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화장실 앞 통로가 인파로 막혀 역사 직원들이 통행을 안내해야 할 정도였다. 전날 설치된 추모공간에는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김소월 시인의 시 ‘진달래꽃’을 적은 노트가 놓여 있었다. 국화꽃과 커피, 마카롱, 쿠키도 보였다. 이날 오후 들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시민들은 추모 대열을 묵묵하게 지켰다.

추모공간 벽면에 붙여진 흰색 종이 위에는 슬픔과 연대, 재발방지 의지 등이 담긴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었다. 포스트잇에는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정치가 못 나서 미안합니다. 힘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혔다. ‘성폭력 없는 일터, 안전한 일터를 원합니다’ ‘여성이 안전한 세상.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문구도 보였다. 피해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빗물에 젖어 번질까봐 글자 위에 테이프를 붙이는 이도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신당역 방문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신당역’이라는 문구가 달린 글이 계속 올라왔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가해자 전모씨(31)가 저지른 범행에 분노했다. 부산에서 일하는 한국철도공사 직원 김모씨(35)는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상경해 신당역을 찾았다. 김씨는 “열심히 일을 하다 돌아가신 게 가장 안타깝다”며 “가해자가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구속을 하지 않았는데, 피해자를 더 확실하게 보호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포스트잇에 ‘시민의 안전이 먼저였던 여성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문구를 적어서 붙였다. 남모씨(37)는 “강남역 사건 이후 변한 게 없다”며 “판사가 스토킹 가해자를 사회로 그냥 돌려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이날 신당역을 찾아 “저는 그렇게 (여성혐오 사건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힌 것을 두고는 비판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박소윤씨(22)도 “사건을 보자마자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바로 떠올랐다”며 “어떻게 여성혐오 범죄가 아닐 수 있나.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일반 시민으로서 추모를 하러 왔다”고 밝힌 뒤 현장에서 오열했다.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을 추모공간에 붙인 박 전 위원장은 “피해자는 살 수 있었다”며 “단순히 추모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기를 간곡히 바란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했다.

유경선·김세훈·김송이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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