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총리 지시"라며 직원들에 "재발 방지책 내라"
서울교통공사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과 관련해 국무총리 지시사항이라며 재발방지를 위한 의견을 제출하라고 직원들에게 공지해 빈축을 사고 있다. 젠더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조치 미비, 역무원의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이 얽힌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땜질 처방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 15일 오후 7시쯤 사내 공지를 통해 “신당역 여직원 사망사고 건 관련, 국무총리 지시사항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사업소별로 내일(16일) 10시까지 영업계획처 ○○○부장(오피스톡)에게 의견을 제출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공사가 배포한 ‘신당역 사망사고 관련 재발방지 대책 아이디어 제출 양식’을 보면 부서별 내용(아이디어), 내용별 기대효과 등을 최대 3개 쓰도록 돼 있다.
공사에 따르면 16일 오전 10시까지 사업소들로부터 40여개의 의견이 제출됐다. 공사 관계자는 “추가로 의견을 계속 받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공사 내부에선 사업장에서 발생한 참사의 대책을 아이디어 공모식으로 급조하는 것은 ‘면피용 보여주기’ 이상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섭 서울교통공사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땜질식이라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며 “역무원들은 공포에 떨면서 회사가 안전을 보장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대책까지 (직원들이) 마련하라는 식이어서 실망하고 화가 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사 관계자는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근거를 찾고 싶어 현장 직원들이 일하면서 느끼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담당자가 ‘아이디어’라는 단어라든지 촉박하게 오전 10시까지 의견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 무리를 해서 현장 직원들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사가 가·피해자 분리 등 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야간근무 인력 확충 등 매뉴얼 재정비 등 정작 필요한 대안 마련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역무원인 피해자는 사건 당일 야간 순찰을 할 때 홀로 근무하다 변을 당했다. 공사 내 책읽는여성노동자모임은 성명을 내고 “2인 1조 근무는 2016년 구의역 노동자 사망 때 다시는 일터에서 노동자를 잃지 않도록 권고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안전 인력을 확보하고 허울뿐인 경영 효율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공사에 촉구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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