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성폭력 대응' 뒷북..또 분노의 포스트잇
법무부·검경 모두 "엄정 대응"
반의사불벌 규정 폐지 추진키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자 정부는 스토킹 범죄에 엄정 대응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도록 스토킹처벌법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는 강조하면서 스토킹 범죄 등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대응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뒷북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과 관련해 법무부에 제도 보완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면서 “작년에 스토킹방지법을 제정·시행했지만 피해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제도를 더 보완해서 이러한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대검찰청에 스토킹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법무부는 “검찰에서 스토킹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요소를 철저히 수사하고 가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구금장소 유치 등 신속한 잠정조치와 구속영장을 적극적으로 청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폐지하도록 스토킹처벌법도 개정하겠다고 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범죄로, 스토킹처벌법의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 스토킹 범죄에 엄정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대검은 피해자에 대한 집착 성향·정도, 직장·주거 등 생활 근거지 밀접성, 범행 경위·기간 등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요소를 치밀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긴급 소집한 대책회의에서 “여성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고 현행법상 가능한 유치장 유치를 포함한 잠정조치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스토킹 범죄와 성폭력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고 대처했는지를 두고선 의문이 나온다.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법무부가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론수렴을 통해 합리적 실천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한 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 정부 업무계획’에 이 같은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여가부 폐지’ 중점
성폭력 방지 정책적 고민 적어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 폐지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국정과제에는 여성폭력과 관련해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확립’이라는 제목 아래 ‘신고부터 피해회복까지 권력형 성범죄·디지털성범죄·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 강화’라는 간략한 내용만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은 7월 업무보고에서는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여가부 폐지 작업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한편 스토킹 살인 사건의 가해자 전모씨(31)가 이날 구속됐다. 김세용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부장판사는 증거인멸과 도망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앞서 영장심사를 마치고 법정을 나선 전씨는 ‘피해자에게 할 말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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