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사랑, 현실은 다르다.."발달장애의 性, 상호작용이 핵심" [인터뷰]
"드라마 속 발달장애 여성의 관계, 연애로 보기 어려워
자폐·지적장애인 성 행동 문제..자신을 아기로 인식
사회적 자아 인지하고 상황 맞게 행동하도록 교육을"
우영우의 '동그라미' 같은 친구..주변 '좋은 사람' 필요
성교육도 부모로부터 시작, 원활한 '상호작용' 목표
"장애인 아닌 다른 특성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이길"
정 관장은 “사람은 나이에 따라, 때와 장소에 따라, 인간관계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달리 행동해야 하는데 발달장애인은 변화를 어려워 한다. 그때 그때 달라져야하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며 “성적인 욕구를 표출하는 데 있어서도 때와 장소, 나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가려야 한다는 걸 알게 하려면, 먼저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자신을 인지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정 관장은 30년간 발달장애인 성교육 분야에 대해 연구해온 국내 1호 전문가다. 국내 발달장애인 성교육 필요성에 대한 연구 및 인식이 부족하던 1990년대 관련 논문을 쓴 이후 외국의 논문, 사례 등을 참고하며 연구를 거듭해 국내 발달장애인 성교육 체계를 정립해 왔다. 한국장애인개발원과 함께 발달장애인 성교육 매뉴얼을 개발했으며 지난 3월부터 주양육자(부모)를 위한 교육, 발달장애인 성교육 전문가 양성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정 관장을 찾은 건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로 촉발된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때문이었다. 해당 드라마는 발달장애인에 대해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졌는데, 그중 하나가 발달장애인의 성(性)이다.
정 관장의 답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자폐인은 상호작용이 어렵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어느정도 할 수 있더라도 연애는 쉽지 않더라”면서 “그런데 연애와 결혼은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남들과 상호작용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면 꼭 결혼을 목적으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관장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자녀의 성 관련 애로사항에 곧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20세 발달장애인의 음란물 접근’, ‘스타킹에 집착하는 자폐 학생’, ‘SNS 몸캠 피해를 당한 발달장애인’ 등 ‘사례로 배우는’ 시리즈를 통해 부모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있다.
정 관장은 “인터넷과 미디어 발달로 발달장애인들도 왜곡된 성, 성 범죄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졌다”면서 “음란물을 접하고 따라 하다가 성범죄자가 되거나 몸캠 피싱을 당해 협박당하는 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교육을 통해 예방하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Q. 드라마 우영우의 인기를 실감하시나.
“미디어의 힘이 진짜 큰 것 같다. 우리가 수십년 해도 안되는 일을 이렇게 단번에 해냈다.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주인공이 장애가 있음에도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무능하고 의존적이고 피동적이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지 못하고 그런 기존의 장애인 이미지로 그려진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거기에 더해 누군가에 도움도 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Q. 발달장애인 부모 중 불편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자폐를 자폐 스펙트럼장애라고 하는 이유가 굉장히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다. 보통은 우리가 감당해내기 어려운 자해를 한다던가, 남을 때리고, 물건을 부수고, 소리를 지르는 그런 경우도 많고, 일상적인 자기 신변처리도 어려운 분들도 있다. 본인의 자녀를 우영우와 비교하면 드라마를 보는 게 편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볼 때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늘 ‘저건 말도 안돼. 판타지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영우도 주인공을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등장시킨 드라마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Q. 드라마 10화에서 그린 발달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 사건은 사랑인가 성폭행인가.
“비장애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계속 만나면서 저 사람이 진짜 나를 사랑하는지 식별해야 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옆에 많아야 한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발달장애인 여성의 엄마가 부족했던 점은 딸을 지키기 위해 자기 옆에 끼고만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땐 그걸로 충분했겠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녀는 가족이 아닌 누군가로부터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받고 싶어한다. 부모가 할 일은 검증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복지관이나, 자조모임같은 그런 사회적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게 부족하면 자신에게 잘해주고 호응해주는 나쁜 남자나 인터넷에 빠지는 것이다.”
Q. 인터넷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은 거의 없다. 복지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대부분 부모님이 확인해서 데려온다. 장애인 자녀라도 성인이면 부모가 스마트폰, 인터넷 등을 함부로 보면 안된다고 교육하는 경우가 있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엔 생각해볼 문제다. 자녀의 인터넷 생활을 부모가 관리하지 않으면 이런 인터넷 범죄로부터 어떻게 자녀를 지켜줄 수 있겠나.”
Q. 장애인 성교육은 뭐가 다른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나.
“성은 생식기 끝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인격, 내 존재에 다 있는 것이다. 내 갈망이 있고 이런 다른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어떻게 나누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내가 피해당하지 않고, 피해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서로 만족할만한 상호작용을 할 것인가.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할 것인가 그런 것을 가르친다.”
Q. 어렵고 추상적으로 들린다.
“사람의 존재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해야한다. 가정 안에서, 학교 안에서, 직장에서 다른 가면을 써야하는 것이다. 비장애인도 쉽지 않다. 그런데 발달장애인, 특히 자폐인들 같은 경우는 이런 변화가 너무 어렵다. 그때 그때 달라져야하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가 어렵다. 매일 가정 안에서 부모 자식 관계로만 살다보면 스무살, 서른살이 되어서도 어디에서나 아기다. 그러면 나이에 맞지 않게 밖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벗고, 집에서 하던대로 생식기를 만지고 그런다.”
Q. 자폐인에 사회적 자아를 어떻게 인식시키나.
“자폐인들은 늘 자신을 아기로 인식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교육 할 때 ‘당신은 몇 살이며 이런 사람이다’를 가장 먼저 강조한다. 그런 뒤 ‘서른살 몸을 갖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규칙이 있다. 속옷으로 가려지는 부위는 만지지 않고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고 싶다면 화장실에 가서 만지면 된다.’이런 식으로 교육한다.”
Q. 그렇게 가르치면 이해하고 잘 따르나.
“무조건적으로 보호하고 다 해주는 것은 어릴 때만 통한다. 골방에서 내가 누구인지 고민한다고 나를 알게되는 건 아니다. 가정에서 1차적으로 부모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식으로서 나를 인지했다면,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친구, 성인기에는 직장과 사회에서 나를 인지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계속 어린아이처럼 대하지 말고 너는 지금 학생이다. 스무살 성인이다. 직장에 다닐 땐 이렇게 해야한다. 계속 그렇게 알려주면서 사회 안에서 자신을 인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몸소 부딪쳐야하기 때문에 집에만 있어서는 안된다.”
Q. 집 밖에서는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닐텐데.
“그렇다. 우영우도 그랬듯 발달장애인들은 학교에서 왕따당하고 괴롭힘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이 청소년기에 정신과적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큰 충격을 받고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아픔이 성인기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너무 안타까운 사례를 많이 봤다.”
Q. 우정도 어려운데 사랑은 더 어려울 것 같다.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부모나, 친구나, 다 내가 받아들여지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먼저 스킨십과 몸의 돌봄을 통해 자기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어릴 때 부모와의 신뢰와 관계가 중요하다.”
Q. 훈련을 통해 상호작용이 가능하면 연애도 할 수 있나.
“우정도 친구가 나를 같이 좋아해야 관계가 성립이 되고, 연인도 같이 좋아해야 하는데 자폐는 자기 중심성이 강해서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기 힘들다. 자기가 좋아하면 친구라고 생각하고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중심적인 특성을 바꾸기 쉽지 않다.”
Q. 발달장애인은 연애하고 결혼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딸은 성폭력 당할까봐 걱정, 아들은 성범죄자 될까봐 걱정한다. 발달장애인 여성들은 성관계까지 생각을 못한다. 그냥 함께 얘기하고 차마시고 영화보고 하는 건 좋지만 성관계까진 생각 못하다가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들은 아무 데서나 옷을 벗거나, 잘못된 성 표현을 따라했다가 범죄자로 몰린다. ‘유튜브에선 이렇게 했더니 상대가 좋아하더라, 그래서 나도 했다’고 얘기한다. 무엇이 잘못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내 몸에 대한 교육도 대단히 중요하다.”
Q. 내 몸 교육은 무엇인가.
“상대방이 나쁜 의도가 있는가 알려면 내 몸에 어떻게 하는지 잘 봐야 하고 내 몸에 대해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네 몸은 네꺼야. 너만 만질 수 있는 거야’라고 부모가 아이에게 교육시키는 거다. 스스로 몸을 소중하게 느끼도록 돌봐주고 어느 시기가 되면 아이가 스스로 씻고 닦을 수 있도록 교육해줘야 한다. 그래야 내 몸 교육이 쉽게 된다. 그런데 엄마가 없으면 아빠가 닦이고, 가끔 이웃집 할머니가 와서 씻겨주고 그러면 내몸은 누가 만져도 되는 걸로 인식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 씻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 잘 못해도 시켜야 한다.”
Q.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정말 힘들겠다.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하다. 어릴 땐 부모가 다 해주면 되겠지 하겠지만 커갈수록 아니다. 고집도 세져서 부모 말이 씨알도 안먹힌다. 그래서 학교 졸업한 뒤 성인 발달장애인일수록 부모들이 더 힘들어하는데, 이렇게 복지관에 오거나 장애인 자조모임을 만들어 시간 보내고 상호작용하는 게 가장 좋다. 훌륭한 어머니들은 이 자녀의 시간표를 굉장히 타이트하게 마련하고 그에 맞춰 생활 리듬을 갖게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게 해서 갈 곳이 있도록 만든다. 발달장애인들도 안정감이 필요하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야 한다.”
Q.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씀은.
“드라마 우영우에 보면 우영우를 캐나다에 보내려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가 자폐인이 살기에 훨씬 좋다고. 사실 하드웨어는 한국이 더 좋다. 거기와 우리가 다른 것은 소프트웨어다. 자폐인,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사회의 태도, 인식의 차이다. 20년 전 유럽 사람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을 장애가 아닌 그사람이 가진 특성으로 봐주고 우리와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도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될 줄 알았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나도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그대로다. 드라마 우영우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길 기대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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