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일등공신' 권성동과 이준석
“내가 자리에 연연했다면 대선 일등공신으로서 인수위나 내각 참여를 요구할 수 있었지만 포기한 바 있다” 지난달 29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 발언이다. 권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사퇴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자신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당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원내대표로서의 책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불쑥 나온 ‘일등공신’이라는 말이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 결국 일등공신 권성동 의원은 국민의힘의 새로운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19일이 되면 그 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일등공신! 역사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일등공신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 창업의 결정적 역할을 한 정도전과 수양대군의 책사 한명회 등이 그들이다. 우리가 정치 상황을 비유할 때 중국 한나라와 초나라가 패권을 다퉜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중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에 대한 얘기가 많이 비유된다. 한고조인 유방은 젊은 시절은 시정잡배나 다름없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유방은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밝혔다고 한다. 작을 마을의 벼슬을 살던 유방은 진시황릉 노역에 보낼 죄수를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호송하는 과정에서 많은 죄수가 달아나고 말았다. 호송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유방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이에 유방은 아예 모든 죄수를 풀어주면서 자신도 달아나 버렸다. 한고조 유방의 시작은 이러했다.
세력이 약했던 유방이 막강한 항우에게 승리하면서 중국의 두 번째 통일 왕조를 이룬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등공신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다. 우선 유방에게는 장량이라는 전략가가 있었다. 흔히 유능한 참모를 칭할 때 장량의 자(字)인 자방(子房)을 따서 ‘장자방’이라고 한 것도 예서 비롯됐다. 치밀한 관리형 참모인 소하(蕭何)와 토사구팽이란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한 한신(韓信)도 있었다. 유방은 이들의 도움으로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다. 이들은 한삼걸(漢三杰) 혹은 건한삼걸(建漢三杰)이라 한다. 한나라를 세운 세 명의 뛰어난 인물, 곧 일등공신이다.
사실 유방의 능력은 이들을 넘지 못했다. 실제로 유방은 “무릇 군영의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해 천리 밖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무하며 군량을 준비해 그 공급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보다 못하다. 또한 백만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항상 이기고, 성을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시키는 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고 했다. 유방은 자신을 낮추면서 이들을 가까이 둠으로써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다.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의 훗날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일등공신 한신을 초왕에 봉한다. 그런데 한신의 오랜 친구인 항우의 부하 종리매가 의탁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 유방은 대노한다. 한신은 구인 종리매의 목을 받쳤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해 버린다. 이에 한신은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적국을 멸하고 나면 충신조차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한 내가, 고조에게 죽게 되었구나”고 탄식한다. 그 유명한 ‘토사구팽’이다. 그런데 유방은 바로 한신을 죽이지 않는다. 초왕의 지위를 박탈하고 그의 세력을 빼앗아 버렸다. 유방이 죽고 난 후 부인 여태후에 의해 참살당하게 된다.
또 다른 일등공신 장량은 “오늘 이 세 치 혀로 황제의 스승이 되고 만호의 봉읍을 받았으며, 그 지위는 열후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포의로 시작한 사람으로는 지극히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이라 나는 이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적송자((赤松子)의 뒤를 따라가 노닐고자 한다”면서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적송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선인(仙人), 신선이다. 선인을 자처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일등공신으로서 지위를 갖고 권한을 누리기에는 그의 미래 역시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소하. 요즘으로 치면 병참 등 관리를 책임졌던 그는 논공행상 중에서도 으뜸이라면서 찬후로 봉해지고 식읍 7000호를 하사받는다. 사마천은 소하에 대해 “백성들이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원한을 품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여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제공했다. 한신 등 한나라 창업공신들은 주살되었으나, 소하가 이룩한 공적만은 찬란히 빛나 그의 지위는 공신 중에서 제일 높았다”고 평가했다. 이를 보면 소하는 한신을 비롯해 번쾌, 진평 등 한나라 창업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공신 대부분이 죽임을 면치 못한 것과 달리 말년까지 부귀를 누리며 살았던 모양이다.
엊그제 모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이준석 전 대표의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여론조사 업체인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13~14일 만18세 이상 전국민 10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은 이준석 전 대표가 윤석열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라는 것 아닌가. 이 보도를 접하면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일등공신 발언’이 다시 떠올라 고사의 일등공신 얘기를 떠올려 본 것이다.
그런데 어찌보면 유방의 한나라 건국은 오늘의 정국 상황과 비슷한 면이 많아 보인다. “당선되면 공신이 만 명이고, 낙선하면 이유가 만 가지”라는 말도 있지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공신이 넘쳐날 것이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더불어민주당은 숱한 이유가 제기될 것이다. 그럼 한나라의 중국통일에 비추어 정권교체의 일등공신 한신은 누구일까, 그리고 장량과 소하는?
먼저 젊은 세대의 지지를 끌어낸 이준석 전 대표의 역할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공격적인 그의 선거캠페인은 젊은층의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은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고, 이어 비대위 구성으로 강제로 ‘전 대표’가 됐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정치권에 나서자마자 합류한 권성동 의원이 있다. 당시 대다수 의원은 관망했지만, 윤 대통령의 어릴 적 ‘외가 친구’ 권 의원은 시종일관 함께 했다. 하지만 권성동 의원도 불과 5개월 만에 집권당 원내대표 자리에서 하차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 권성동과 이준석.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렇다고 한나라 일등공신과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을 단순하게 비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권력의 부침을 보면서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윤핵관은 분열되고, 선수교체가 이루어지는 분위기다. 신핵관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토사구팽은 역사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정권교체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던 권성동 의원은 19일, 원내대표직에서 총총히 물러난다. ‘강원도 정치인’ 권성동 의원의 건투를 빈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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