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병충해 예방약 믿고 뿌렸는데..배 농사 망친 농민들
병충해를 막아주겠다며 지자체가 나눠준 약제를 뿌렸다가 한해 수확을 망친 농민들이 있습니다. 멍든 배를 바라보며 농민들의 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이희령 기자가 가봤습니다.
[기자]
수확을 앞두고 있던 배 과수원입니다.
이 열매를 보면, 배 표면에 검은 먹물이 흐른 듯한 얼룩이 있습니다.
이 열매도 마찬가지인데요.
약을 준 흔적, 약흔이 그대로 남은 겁니다.
이쪽 열매들은 봉지에 쌓여 있는데, 한 번 열어보면 이렇게 얼룩이 있습니다.
[최병두/피해 농민 : 여기 새카맣게 (약제가) 위에서 흘러내린 거예요. 상중하, 하품을 가져다 보통 주스 공장으로 가는데 그런 데서도 줘도 안 받으니까.]
멍든 배를 바라보다 울컥합니다.
[최병두/피해 농민 : 눈물이 나서 잠을 못 자고…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게.]
농민들이 지난 7월 공급받아 사용한 약제입니다.
식물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게 마르는 병, 과수화상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사용한 건데요.
이 약을 뿌린 직후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지자체로부터 약제를 받은 뒤, 즉시 뿌리라는 공지를 따랐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최병두/피해 농민 : 내가 너무 말을 잘 들었나 봐. (피해 생겼다는) 문자 오고 그래서 '이거 큰일이다']
안양골 영농조합법인의 농가들이 수확한 배를 보관하는 창고입니다.
추석 때 이 배들이 모두 팔리고 없어야 하지만 그대로 있습니다.
이곳의 배들은 모두 약제 흔적 피해를 입었고, 이쪽 배들은 분류 작업도 하지 못했습니다.
피해가 확실한 것만 500상자가 넘고 아예 분류조차 못한 배들도 1000상자가 넘습니다.
[조일암/피해 농민 : (업체에) 보상에 대해서 물어보면 항상 주장하던 7%. 누가 봐도 (피해율이) 7%는 넘잖아요. 제가 봤을 땐 한 30~40% 정도가 되거든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농민들이 사용한 약제는 구리, 석회 성분이 든 '보르도액'이 주 원료입니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산물안전성부 : 기본적으로 보르도액은 생육기에 치지 않습니다. 권장하지 않습니다. 국가기관에서는요. '배는 개화 전까지 쳐라' 이렇게 돼 있어요.]
하지만 지자체가 약제를 나눠준 시기는 열매가 자라는 생육기였습니다.
천안시 농업기술센터는 생육기에 뿌려도 문제가 없다는 업체의 말을 믿었다고 설명합니다.
[천안시 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 : (업체 직원에게) 한 번만 아니고 세 차례 확인을 한 거예요. 그런데 '문제없다'라고 답을 받았기 때문에 공급을 한 거죠.]
약제 업체 측은 해당 약제는 생육기에 치면 안 된다며, 회사가 공식적으로 해당 내용을 확인해준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직원이 잘못 안내했을 수 있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약제 제조업체 : 개인이 개인끼리 얘기한 건데… 그래서 저희가 합의를 하고 보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농민들은 배를 지키려 했던 일이 오히려 피해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책임 있는 답변은 듣지 못한 상황에서, 농민들의 상처만 이 검은 얼룩처럼 깊어지고 있습니다.
(VJ : 김원섭 / 인턴기자 : 박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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