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월드 클래스 '김행직'의 동생 '김태관'
1부 투어 탈락 아픔 이겨낸 당구계 '영 건'
김태관(25) 선수는 '당구 천재'로 불리는 김행직 선수의 동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형이 일군 세계 주니어 3쿠션 선수권대회 우승의 기념탑을 지난 2015년 우승으로 맥을 이었다. 김행직처럼 '당구 메카' 매탄고등학교를 졸업해 탄탄한 실력을 갖췄지만 월드컵 3쿠션 대회에서 3회나 우승한 '월드 클래스' 김행직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나섰다. 지난 8월말 PBA 3부리그 'HELIX PBA 챌린지투어' 2차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1부리그의 문을 다시 두드릴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김태관은 지난 시즌 와일드카드로 1부리그를 경험했지만 프로의 높은 벽을 절감하며 다시 3부리그에서 출발해 두 배의 기쁨을 맛보았다.
◆ 아버지의 당구 사랑과 '용감한 형제들'
김태관은 당구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당구장을 운영해왔고, 평소 28점 정도를 치는 아마추어 고수이기도 하다. 그의 형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최강자급에 속하는 신세대 당구 스타 김행직이다. 그러다 보니 김태관은 아버지와 형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중학교 시절부터 당구를 배웠다.
"부모님이 당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버지는 형을 어렸을 때부터 당구 선수로 키울 생각으로 가르쳤어요. 아버지랑 형이 당구장에 가면 저도 집에 혼자 있기 그래서 따라갔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당구장에 자주 갔어요. 그런데 그 때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당구를 안 배웠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조금씩 당구를 배웠죠."
김태관은 처음부터 당구 선수를 꿈꾸면서 당구를 배우지 않았다. 유년기 시절에는 오히려 당구장에 가는 것이 싫었다.
"저는 진짜 당구를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아예 시작조차 할 생각이 없었죠. 처음에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갔어요.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아버지와 형이랑 있고 싶어서 갔으니까요. 선수가 될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그냥 당구라는 것도 있다는 정도만 알 정도였어요. 어렸을 때 매일 당구장을 가는데 그 때는 당구장이 금연구역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담배 냄새가 너무 심했어요. 담배 냄새 나는 아저씨들이 제가 혼자 있고 그러니까 어리다고 막 귀엽다면서 제 머리 쓰다듬고 하는 게 솔직히 별로였거든요. 놀이터에서 놀 나이였는데 그런 것들이 좋을 순 없었겠죠."
하지만 타고난 재능을 숨길 수는 없었다. 심심풀이로 치던 실력이 빠르게 느는 것을 보며 아버지는 장남에 이어 차남에게도 당구인의 길을 걷도록 지원했다.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최원준(PBA) 선수가 기본기부터 손을 봐줬다. 실력이 늘면서 승리를 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쾌감을 느꼈고 그래서 더 노력하는 동기가 부여됐다.
◆ 중3부터 시작한 당구 유학 생활
김태관은 중학교 3학년에 진학하면서 전북 익산 집을 떠나 본격적인 당구 유학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당구부가 존재했던 서울 배명중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배명고등학교를 진학한 이후 당구부는 해체됐다. 결국 그는 당구부가 있는 매탄고로 전학했다. 당구 사관학교로 불리는 매탄고는 형 김행직을 비롯해 조명우, 서지훈, 김준태, 고준서 선수 등을 배출한 당구계의 명문 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김태관은 그렇게 4년여의 청소년기를 당구와 함께 보냈다.
"당구 덕분에 혼자 객지 생활을 하게 됐죠. 또래 친구들과 당구도 치고 밥도 먹고 하면서 재밌게 보낸 거 같아요. 지금은 서로 바빠서 잘 만나지는 못해도 임성균(26·TS샴푸‧푸라닭히어로즈) 선배나 고준서(23·PBA)하고 가끔씩 연락하고 지내요."
김태관은 당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부터 군복무 시절만 제외하면 당구 '외길' 인생만 걸어오고 있다. 10여 년 동안 당구인의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5년에 열린 세계주니어 3쿠션 선수권대회다. 당시 김태관은 기사회생으로 어렵게 대회 자격을 얻어 출전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우승까지 차지했다.
"2015년에 열린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은 진짜 운이 좋았어요. 원래 각 국가에서 3명이 나가야 하는데 저는 국내 선발 대회에서 5위를 했거든요. 대회 출전 자격이 안됐죠.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2명이 못 나오게 되면서 우리나라 선수에게 혜택이 돌아왔어요. 저한테까지 기회가 온 거죠. 그리고 주니어 대회라는 게 성인이 되면 못 나가는 대회잖아요. 인생에서 다시없을 기회인데 우승까지 했으니 더 기억에 남아요. 우승했을 때 정말 짜릿했어요."
대한당구연맹 소속이었던 그는 지난해부터 PBA로 전향했다. 이적 후 첫 해부터 와일드카드로 1부 리그에 올라 초반에는 전통적인 강호로 평가받는 강민구 선수를 잡아내며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올해 챌린지투어 1차전에서도 2회전에서 탈락하면서 부진의 기간이 더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2차전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며 그 동안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다.
"이번 챌린지투어 2차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당구가 너무 안됐어요. 특히 직전에 했던 1차전에서 2회전 탈락하고 실망이 컸어요. 어떻게 보면 슬럼프였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가 마음을 좀 내려놓고 경기를 치르니까 이번에 좋은 성적이 나오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부담감을 내려놓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 뗄 수 없는 꼬리표 '김행직의 동생'
김태관은 '김행직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 꼬리표가 유소년 시절에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슈퍼 스타의 동생이나 자녀들이 갖는 부담감을 벗어나기 어려운 탓이다.
"어렸을 때는 형이 천재라는 소리도 듣고 하니까 저도 부담이 많이 됐어요. 어릴 때 경쟁심도 클 수밖에 없는데 워낙 형이 유명했으니 의식이 될 수 밖에요. 그런데 커가면서 '내 할 일을 잘하자, 시합만 잘하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점차 고점자가 되고 실력이 올라와 선수가 된 이후 지금은 나름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 형의 유명세가 오히려 더 좋아요. 형이 지금은 더 챙겨주려고 하는 게 너무 고맙기도 해요."
김태관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항상 형의 그늘에 가린 것만은 아니다. 공식적인 전국대회에서 형을 꺾고 당당히 결승전에 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기록적인 면만 보면 대한당구연맹 시절 형과의 승부는 1승 1패로 팽팽하다.
"20살 때 연맹 대회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 때 형한테 졌거든요. 성인되어서 처음 8강 간 대회였는데 형한테 지고 탈락했어요. 그 때 형이 경기 끝나고 '오늘따라 잘 맞았네'라고 하더라고요. 나름 위로를 해준 거죠. 그러다 작년에 강원도 양구에서 열렸던 '국토정중앙배' 4강에서 두 번째 맞대결을 가졌는데 거기서 제가 형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갔어요. 결승에서는 제 고등학교 스승님이었던 한춘호 코치님한테 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대회도 정말 기억에 남아요. 준결승에서는 형하고, 결승에서는 고등학교 스승님과 맞대결을 펼친 대회였으니까요."
당구팬의 입장에서 형제간 다음 맞대결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스포츠에서 형제간 맞대결은 흔한 풍경이 아니다. 특히 형의 유명세 때문에 동생 김태관과의 맞대결은 언제든지 화제성이 넘칠 수밖에 없다. 팬들의 마음처럼 김태관도 형과의 맞대결을 기대하고 있다. 이왕이면 그 자리가 결승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당장은 실현되기 어려운 장면이다. 김행직은 대한당구연맹 소속으로 PBA 전환을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은 당연히 형이 훨씬 낫죠. 평균적인 실력을 봤을 때는 모든 부분에서 많이 차이가 나요. 무엇보다 경기 경험 부분에서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어렸을 때는 형이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 막 쏘아붙이면서 가르치는 게 있었어요. 그러다 티격태격도 많이 하고…. 그 이후로는 서로 당구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해요. 요즘 서로 바빠서 자주 못 보긴 하지만 경기 끝나면 서로 응원하고 축하해주고 그래요."
◆ "기복 없는 꾸준한 선수로 남고 싶어"
김태관은 인터뷰 내내 꾸준함을 강조했다. 스스로 기복 없는 선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철학을 거듭 내비쳤다. 그래서 그의 롤모델도 세계 1인자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는 네덜란드의 딕 야스퍼스 선수를 꼽는다.
"개인적으로 야스퍼스 선수를 좋아해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꾸준하다는 점에서 제가 배우고 싶은 선수예요. 매번 시합을 보면 기복 없이 항상 평균적인 기량을 발휘하거든요. 그런 걸 보면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안정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야스퍼스 선수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경기도 많이 치르면서 경기 감각을 많이 익혀야 하겠죠."
'영 건' 김태관은 큰 대회를 치르는 것에 목말라한다.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장 목표는 1부 리그 무대를 다시 밟는 것이다.
"전에 와일드카드로 1부 리그를 경험해봤지만 처음이라 제대로 경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너무 부담은 안 가지려고요. 2부 리그에 올라가서라도 꾸준하게 조금씩이라도 성적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프로팀에도 들어가고 싶고요. 팀에서 서로 피드백을 해주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요."
김태관은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선수로 기억에 남길 바라고 있다.
"부모님하고 형이 많이 응원해주고 신경도 많이 써줘요. 그리고 예전부터 꾸준하게 후원해주시는 에이블 이남교 대표님도 감사한 분이시구요. 제가 잘해서 고마운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제가 많이 알려져야 도와주신 분들을 홍보 해드릴 수 있잖아요. 앞으로 실력과 인성이 모두 성장하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홍성완 기자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seongwan62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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