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만드느라 치아가 빠져서 좋아하던 마른 오징어 못 먹어요"
비영어 시리즈 최초 감독상 등 6부문 수상.. 오늘 '오겜' 1년
황 감독 "K콘텐츠 비결? 해외 수출 집중해온 한국인 근성"
“이렇게 많은 에미상 트로피가 한꺼번에 모이다니, 보기 드문 일이네요. 다 어느 작품에서 나온 거죠 감독님?”
사회자 박선영 아나운서의 말에 황동혁 감독이 웃으며 답했다. “아, ‘오징어게임’(이하 ‘오겜’)이라는 작품에서 나온 겁니다, 하하.”
16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오겜’의 에미상 수상 기념 간담회가 열렸다. 지난해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에 공개된 지 딱 1년인 365일째 되는 날. 이 드라마는 미국 ‘방송의 오스카’로 불리는 에미상 시상식에서 비영어 작품 최초로 6개 부문 상을 받았다. 이날은 에미상 트로피를 들고 금의환향한 감독상의 황 감독과 게스트 여우상의 배우 이유미, 프로덕션 디자인상의 채경선 미술감독, VFX특수효과상의 정재훈 수퍼바이저, 스턴트상을 받은 심상민·이태영 무술팀장, 김차이 무술팀원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황동혁 감독 “‘스~퀴드’인 줄 알았는데 ‘스~억세션’”
“작품상 발표 때 ‘스~’ 발음이 나오길래 순간 가슴이 뛰었어요. ‘스~퀴드(squid·오징어)’인가 했더니 ‘스~억세션(Succession·작품상 수상작)’이더군요.”
황동혁 감독의 농담에 폭소가 터졌다. “작품상 못 받은 건 아쉽죠. 딴 것보다 지난 1년 여정의 마지막인데, 같이 간 배우·제작진이 함께 한 번 무대에 올랐으면 했거든요.” 소감 말 할 시간이 짧아 스태프들과 어머니께 감사 말씀을 못 드린 것도 아쉬웠다. “시상식 끝난 뒤 전화 드렸을 때 어머니가 우시더군요. 그게 가장 큰 축하였습니다. 감독상은 연출자에게 주는 상인 동시에 드라마 모든 부분의 조화로움에 주는 상이니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는 게 당연하죠.”
영화 ‘헌트’의 감독으로 캐나다 토론토영화제 일정이 겹쳐 참석 못한 남우주연상 수상자 이정재는 영상 인사를 보내왔다. 그는 “시상식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0.1초 사이 ‘맞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 세 번쯤 왔다갔다 했다”며 “우리 작품이 상을 받은 것 자체보다 한국 콘텐츠가 더 많은 세계인과 만나고 사랑받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된 의미가 가장 큰 것 같다”고 했다.
◇김지연 제작자 “‘K무언가’ 만들자며 의도 갖고 달리기 보다…”
K콘텐츠가 앞으로도 이 기세를 이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작사 싸이런 픽쳐스의 김지연 대표는 “공개 사흘 만에 미국서 1위, 1주 뒤 세계 1위를 했다. 정말 다른 세상, 이제 콘텐츠로 이런 게 되는 세상이 왔구나 하는 사실이 가장 새롭고 쇼킹했다”고 돌아봤다. “제도적 뒷받침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간 경험으론 ‘K 무언가를 만들자’하며 의도를 갖고 달려서는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작가들과 창작자들을 향한 인내심을 갖고,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과 유무형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황동혁 감독은 “외국인들이 BTS, 기생충에 이어 ‘오겜’까지 K콘텐츠 경쟁력이 뭔지 물을 때 마다 내 대답은 늘 같았다”고 했다. “한국은 수출 위주의 나라였다고 했죠. 작은 반도에 갇히기 보다 늘 해외로 해외로 보내는데 노력하는 나라였다고. K콘텐츠는 차별성 이전에, 세계 어디 내놔도 퀄리티가 굉장히 높았고, 치열하고 다이내믹한 사회를 살아가니 만들어지는 작품에도 그런 점이 그대로 반영돼 있어 세계의 사랑과 관심,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요.”
◇정재훈 특수효과 감독 “AI인력, 게임에 몰려… 위상 걸맞는 지원을”
채경선 미술감독은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 다르게 만들려면 창작자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 ‘오겜’ 역시 넷플릭스의 지원에 제작사와 감독님이 믿어주고 자율성을 줬기에 나도 한계를 잊고 창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재훈 특수효과 수퍼바이저는 K콘텐츠가 지속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술 변화와 시대 흐름에 걸맞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티스트 역량이 중요하고 기술집약적인 동시에 노동집약적인 특수효과 분야도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이 활발합니다. 하지만 AI 고급 인력은 돈이 되는 게임 분야 쪽으로 많이 몰려서 콘텐츠 기술 개발은 더뎌요. ‘오겜’이 K콘텐츠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면 할리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지자체나 국가가 걸맞는 지원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통틀어 300여 명에 불과한 스턴트 인력이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콘텐츠에 참여한다. 이태영 무술팀장은 “운동할 때 외국 선수들과 맞서도 열정, 섬세함, 끈기, 패기 같은 데서 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며 “저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지만 스태프들 응원하듯 저희도 응원해주시면 더욱 힘을 낼 것”이라고 했다.
◇황 감독 “시즌2는 배우들 늙기 전에 빨리… 내년에 찍어 후년 공개”
황 감독은 “‘오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치아가 빠져서 좋아하는 마른 오징어를 못 먹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즌2는 지금 한창 대본을 쓰는 중인데 내년에 촬영하고 후년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 다음엔 영화를 하나 생각 중이에요. 그런데 ‘오겜’ 시즌2를 다 쓰고 찍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가 흔들리고 삭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우선 눈 앞의 일부터 잘 하자 생각합니다. 원래는 영화부터 하나 하려 했는데 그 사이에 정재씨를 비롯한 배우들이 확 늙어버릴 수도 있으니, 그 전에 빨리 찍으려고요, 하하.”
에미상 수상으로 시즌2의 부담이 더 커졌는지 묻자, 황 감독은 “부담은 모든 작품할 때 다 있다. 친구처럼 지고 가는 거고, 또 큰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수상 소감 때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시즌2로 돌아오겠다고 한 것도 스스로에게 부담을 지운 것”이라고도 했다. “시즌2 게임도 다 정했어요. 근데 그건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요. 혹시 어디서 들으시더라도 말씀 마시고, 제가 술자리에서 떠들라치면 제 입을 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서 만난 할리우드 배우들 중에 ‘오겜’ 시즌2에 출연하고 싶어한 사람은 없었을까. 황 감독은 “확실히 없다”며 웃었다. “시즌2도 무대가 한국이어서 갑자기 외국 유명 배우가 나오기는 어려울 거예요. 시즌3가 나와서 무대를 옮기면 혹시 모를까.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진짜 팬’이라고 하길래 기회 되면 한 번 얘기해볼까 우리끼리 농담은 했죠. ‘같이 게임 해볼래(Will you join the game)?’ 하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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