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구속에 '깐깐한' 사회.. "재범 위험 땐 적극 판단을"

이희진 2022. 9. 1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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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피살'로 본 문제점
고소장 접수 이틀 뒤 구속영장 신청
법원은 '도주 우려 없다' 이유로 기각
피해현장 추모 발길.. "죽어야 끝나나"
2021년 스토킹 피의자 10.6%만 구속
데이트폭력 구속률은 갈수록 떨어져
전문가 "판사 부담 덜어줄 방안 필요"
스토킹으로 시작해 결국 살인으로 끝나는 끔찍한 범죄가 반복되는 건 한국 사회가 범죄자를 구속하는 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으면 가해자의 범죄를 멈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피의자 구속 사유에 ‘피해자·참고인 위해 우려’를 포함하는 등 재범 위험이 높은 스토킹 범죄나 성범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보다 적극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모 메시지 가득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16일 한 시민이 포스트잇에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민들은 추모 공간에 국화나 커피 등을 두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하상윤 기자
◆“구속에 인색… 스토킹 범죄와 성범죄 판단할 땐 바뀌어야”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10월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 전모(31)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이틀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촬영물 등 이용 협박) 혐의로 입건된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스토킹 범죄나 성범죄 등의 구속에 소극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자 인권 보호, 인신 구속에 대한 판사들의 부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 판사는 “형사사건을 담당할 땐 판사 결정에 따라 한 개인의 구속 여부가 가려지다 보니 아무래도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 스토킹 관련 송치 결정 현황’ 자료를 보면, 스토킹처벌법 위반 피의자 총 545명 중 58명(10.6%)만이 구속됐다. 데이트폭력 관련 범죄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 데이트폭력으로 형사 입건된 피의자의 구속률은 2019년 5.1%에서 2020년 2.7%, 지난해 2.2%로 떨어졌고, 올해는 7월 기준 1.8%에 불과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구속의 ‘허들’이 너무 높다”며 “재범의 위험이 명백하고 현저한 성범죄와 스토킹 범죄에 대해선 최소한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속에 대한 판사들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구속 이후 피의자나 피고인이 인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안도 필요하다”며 “보증금 납입조건부 석방이나 전자발찌 착용 전제 보석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속 사유에 ‘피해자·참고인 위해 우려’를 명시하는 식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행법은 피의자 구속 사유로 △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를 두고 있다. 피해자·참고인 위해 우려 등 보복 가능성은 구속영장 발부 시 고려사항에 불과하다.

부산대 염윤호 교수(공공정책학) 등이 지난 4월 발표한 ‘피해자 신변보호제도 개선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 연구’ 논문에 따르면, 현장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들도 구속 사유에 ‘피해자·참고인 위해 우려’를 포함하는 데 긍정적이었다. 연구진이 지난해 10월 경찰관 317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652명(83.6%)이 ‘구속 사유에 피해자·참고인 위해 우려를 포함해야 한다’고 답했다. ‘피해자에 대한 보복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서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공동취재
◆이틀째 추모 물결… “결국 또 피해자 죽어야 끝나는 것인가”

역무원이 살해당한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비극이 벌어졌던 화장실 입구의 벽면에는 피해자 추모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었다. 시민들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곳은 언제나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길”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포스트잇 주변으로는 피해자를 기리는 조화와 함께 커피, 마카롱, 빵 등의 간식들이 놓였다.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1시간가량 걸려 신당역에 왔다는 대학생 이모(23)씨는 “고인이 그동안 받았을 스트레스나 고통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스토킹 범죄는 결국 피해자가 죽어야 끝나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30대 남성 최모씨는 “오늘 근처에 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추모를 하려 들렀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신당역 인근 약국에서 일하는 50대 여성은 “고인을 역사 화장실에서 본 적도 있는데, 딸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이희진·백준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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