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헌재 심판대 오른 국보법
박정철 2022. 9. 16. 18:03
'동방정책'으로 유명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1974년 5월 돌연 사임했다. 자신의 비서인 귄터 기욤이 동독 슈타지 소속 간첩으로 드러나자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동독 출신인 기욤은 1950년대 사민당에 입당한 뒤 총리실에 잠입해 비서로 채용됐다. 성실한 그는 브란트의 신임을 얻었고, 1973년 6월 브란트 부부가 해외여행을 갈 때 동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그가 기밀문서를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동베를린으로 넘긴 첩자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 서독 헌법수호청의 수사로 꼬리가 잡히면서 기욤은 1974년 4월 체포돼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브란트는 당시 동독의 간첩 침투 공작을 우려해 '과격파공직취임금지령'까지 내렸지만 정작 자신의 등잔 밑은 까막눈이었던 셈이다.
15일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7조(1·3·5항) 등의 존폐를 두고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 조항들은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고무하거나 이런 단체에 가입하는 행위, 반국가단체 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보법 7조는 1991년 이후 7차례 헌재 심판대에 올랐지만 모두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헌재 재판관 다수가 진보 성향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온 안보수호법이다. 지난해 적발된 '청주 간첩단'에서 보듯, 문 정부 때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고 대북 경각심이 느슨해지면서 종북세력이 시민·노동운동가로 위장해 암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부터 무력화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안보 버팀목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일각에선 "국보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지만, 기본권도 자유민주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허용된다는 게 헌법 취지다. 세계 선진국들도 국체를 위협하고 전복하려는 시도는 용납하지 않는다. 국보법 폐지는 북한이 적화 야욕을 버리고 무력 도발을 멈출 때 공론화해도 늦지 않는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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