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파업 때문에 회사 지각했다"..애꿎은 시민 잡은 금융노조

서정원,박나은 2022. 9. 1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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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그들만의 파업'
국책은행 노조만 참여율 높아
부산이전 갈등 거센 산업銀
노조원 76% 대거 거리로
기업銀도 5000여명 동참
광화문·용산 교통체증 극심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데 지각"
바쁜 시간 발묶인 시민 분통

◆ 금융노조 파업 ◆

금융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16일 서울 한 시중은행에 `일부 업무가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국책은행 직원들이 대거 파업에 참여했음에도 창구는 한가한 모습이어서 `인력 구조조정론`에 힘이 실린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형기 기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의 총파업 집회로 시끄러웠던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모 지점에는 직원 4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고객은 3명뿐이어서 번호표를 뽑자마자 바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주변의 다른 은행 지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한 지점에서 만난 고객 A씨(52)는 "총파업이라고 해서 지점이 문을 닫거나 대기가 길어질까 봐 여유 있게 왔는데 평소와 똑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노조가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사거리 등지에서 총파업 집회를 벌였지만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참여율은 0.8%에 그쳤다. 은행마다 노조 간부를 중심으로 수십 명에서 100명 정도만 파업에 참가한 수준이다. 임금 5.2% 인상, 주 4.5일제 근무 등 의제들이 공감을 얻지 못한 데다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파업에 참가했다가 역풍을 맞을까 봐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0여 명이 참석했다는 A은행 관계자는 "전 직원이 아닌 노조원을 기준으로 참여율이 1% 이내로 영업 차질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조원의 약 1.7%가 참여했다는 B은행 관계자는 "전 직원을 기준으로 보면 전국에서 지점당 1명도 참석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5대 은행 파업 참여율이 0.8%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고객 불편은 없었지만 출근길 교통 혼잡으로 몇 시간 동안 정체가 이어졌다. 노조원들이 세종대로 4개 차로를 점거하고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면서다. 이들은 '공공기관 탄압 중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교통 정체에 대비해 집회 및 행진 구간 주변에 안내 입간판 40개를 설치하고 교통경찰 등 200여 명을 배치해 관리에 나섰지만, 버스 이동 등이 원활하지 않아 일부 시민들의 발이 묶였다. 서울시 교통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도심 차량 통행 속도는 시속 11㎞대까지 떨어졌다.

서울 중구 모 회사에 근무하는 박 모씨(27)는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광화문 인근에서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해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5분가량 지각했다"고 전했다. 은평구 불광동에서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이 모씨(53)도 "시위를 해도 한참 바쁜 시간을 피해서 할 것이지, 이렇게 길을 막고 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 금융노조가 4개 차로를 점거하고 총파업 출정식을 벌이고 있다. 1만명에 달하는 노조원이 용산 대통령실까지 거리 행진을 벌이면서 교통 정체가 오전 내내 이어졌다. [박형기 기자]
금감원에 따르면 17개 은행의 파업 참여자 수는 이날 오전 기준 9807명, 파업 참여율은 9.4% 수준(전 직원 대비 기준, 조합원 대비로는 13.6%)이었다. 금융노조가 내세운 임금 인상, 주 4일제 근무 등 주장이 '귀족노조의 탐욕'이라며 뭇매를 맞은 영향이 크다. 6년 전 총파업 당시 열심히 참여한 은행들이 욕만 먹고 고객을 빼앗긴 학습 경험도 작용했다. 금융노조는 당초 교섭에서 2022년 임금 인상률로 6.1%를 요구했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5.2%로 낮췄다. 근무시간도 처음에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 근무를 주장했다가 비난이 이어지자 '1년간 시범실시 후 주 4.5일 근무'로 선회했다.

이날 파업은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노조 등이 주도했다. 본점 부산 이전을 두고 사측과 갈등하는 산업은행은 전 직원 3400여 명 중 16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노조원(약 2100명) 기준으로는 참여율이 76%에 달한다. 마찬가지로 정치권에서 부산 이전설이 나오는 수출입은행 참여율도 5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도 5000명 안팎의 노조원이 참석하며 참여율 50%를 보였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반대하고 있다. 정원 감축, 경비·업무추진비 예산 삭감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은행 영업은 큰 차질 없이 마감됐다. 앞서 15일 접수를 시작한 안심전환대출 신청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문제는 보고되지 않았다. 지난 총파업이 있었던 6년 전보다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 사용은 늘고 창구 이용은 줄어든 점도 큰 혼란이 없었던 요인이다.

[서정원 기자 /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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