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내치, 외치로 만회 가능할까

2022. 9. 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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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엘리자베스 2세 배웅하고 내친김에 유엔총회까지
외부 상황 변화가 촉발한 ‘외교의 시간’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을 시작으로 영국, 미국, 캐나다 등을 순방한다. 특히 9월 20일에는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예정돼 있다. ‘자유, 평화, 동맹’ 등을 꾸준히 언급해온 만큼 해당 가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예정된 대외환경 변화와 맞물리며 더욱 주목받는다.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끼치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이 크고 작은 국내 정치적 변화를 앞두고 있다.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것은 오는 9월 27일로 예정된 일본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다.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과거사 문제가 걸려 있다. 국장 이후 일본 정부, 여론 변화에 따라 대일외교의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 10월 16일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이 걸린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린다. 정부의 탈중국, 한미동맹 강화 기조가 새롭게 5년 임기를 시작할 시 주석의 대외정책과 융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오는 11월 8일에는 미국이 하원 의석 전체, 상원 의석 3분의 1가량을 새로 선출하는 중간선거를 치른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재선 등과도 직결된다. 미국의 국내 정치적 일정은 이미 파생 효과를 만들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이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IRA의 ‘북미산 전기차만 보조금 지급’ 조항을 대표 성과로 꼽고 있다. 한국은 IRA로 인해 피해를 받는 대표적 국가다. 전기차 보조금 문제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외교전략의 현실성을 판가름할 주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주변국의 정치적 변화가 예정된 상황에서 북한 역시 움직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핵무기 사용원칙과 운영방안도 법제화했다. ‘담대한 구상’을 수정하거나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만 정부는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미국, 중국, 일본 등과 관계를 강화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 외교전략이 이를 동시에 달성할 능력, 상황이 되느냐이다.

한일관계 꼬여버린 한일관계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개선 신호가 나왔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금 지급을 위한 미쓰비시중공업 국내자산 매각 명령 재항고 사건이 김재현 대법관 퇴임으로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일본기업의 국내자산 매각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 기업의 국내자산 매각 절차 중단은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본 정부가 해당 문제에 대한 협의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관계 개선을 원하는 정부의 선택지는 제한됐다. 대위변제나 기금을 조성해 국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안만 남았다. 이를 위해 피해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정부의 과거사 문제 해결 방식이 ‘외교적 해결’이 아닌 ‘국내 피해자들과 협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에 몰두하는 것은 결국, 북한문제와 엮인다. 안보 강화, 북한 비핵화 등을 기조로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협력 강화’를 방안으로 언급해왔다. 문제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처리되는 사안들이다.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 교수는 “정부가 국내 일본기업 자산 현금화 문제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오히려 일본 측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며 “설령 국내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실현되더라도 한일관계가 적대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가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마드리드 | 연합뉴스


박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한일관계 ‘악화’와 ‘적대관계’의 구분이다. 이를 혼동하면 국가 간 협상에서 수세에 몰린다. 박 교수는 “윤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를 보면 ‘일본 정부에 무언가 해주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내놓는데 이는 저자세로 보일 우려가 있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윤석열 정부가 충분히 노력해 온 만큼 이제는 일본이 무엇을 할 것인가로 대화 주제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 삼각안보체제 부활의 역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한·미·일 협력 강화는 한국 정부의 주권적 의사결정이다. 반면 협력이 어디를 겨냥하는지 해석하는 것은 각 국가의 주권영역이다. 한국이 북한의 도발과 중국의 보복을 동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일관계 개선이 정부의 외교과제가 된 상황에서 양국 간 접촉은 늘어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유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아베 전 총리 국장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등을 포함한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다. 외교적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 국장을 계기로 아베 전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 헌법 개정 의지가 일본 내에 확산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양국 간 외교적 해법을 도출한다면, 한국이 관계개선에 대한 대가로 지불한 것이 무엇일지 관심이 모인다.

한중관계 교착상태의 한일관계보다 빠르게 급변할 수 있는 것은 한중관계다. 중국 공산당은 2018년 헌법 제79조의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조항에서 “집권 2기를 초과해 연임할 수 없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19차 6중전회에서는 마오쩌둥·덩샤오핑 시대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로 역사결의도 채택했다. 핵심 내용으로 시 주석은 당의 핵심으로 전당, 전군, 전인민의 지지를 받는 영수라는 점을 대내외에 공식화했다. 사실상 시 주석 3연임을 위한 절차들을 완료한 셈이다.

시 주석 3연임이 결정되면, 중국 대외정책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기존 중국 정부의 행보를 두고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중국이 국내 정치적 문제로 한국의 한미동맹 강화, 탈중국 입장 등에 대한 대응을 자제해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 주석의 3연임 문제로 중국이 주변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다는 시각이다. 어느 쪽이 중국의 본심이든 현상변경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촉발할 키워드는 ‘대만’, ‘반도체’, ‘동북 3성’ 그리고 ‘사드’가 꼽힌다.

이국봉 중국 상하이교통대 교수는 “중국의 국가발전 전략은 주변국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주요 조건으로 한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 문제보다는 대만 문제에 더욱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즉 한국 정부가 중국의 대만정책, 대만이 포함된 반도체 공급망 등의 문제에 직접 엮이지 않는다면 한중관계는 우호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과 리커창 총리(오른쪽에서 세 번째),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해 11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베이징 | 신화연합뉴스


동북 3성 개발 문제 역시 중요하다.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이 선전을 살렸다면, 시진핑은 동북지역을 살릴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16일 시 주석이 랴오닝성을 방문하며 동북 3성 개발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동북 3성이 중요한 것은 북한과 국경이 밀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의 동북 3성 발전전략에 자신들의 경제발전을 연계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북·중·러-한·미·일의 전통적 대립구도가 고착화된다.

가장 직접적인 한중관계의 뇌관은 ‘사드’다. 이는 중국의 핵심이익과 연결된다.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에 실질적 움직임을 보인다면, 한중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우호적 한중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양새다. 지난 9월 15~16일 중국 의전 서열 3위이자 시 주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교수는 “리잔수 위원장은 20차 당대회에서 유임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인물이다”며 “리잔수의 방한은 시 주석이 3연임 이후로도 한중관계를 중시할 생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관계 윤석열 정부의 외교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한미관계’다. 한미동맹을 기존 군사동맹에서 안보, 기술, 경제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겠다는 목표다. 문제는 한국 외교전략의 목표가 미국의 국내적 상황과 맞물리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발명된 것은 미국에서 만들겠다.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말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IRA는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한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 우선주의는 안보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안보 비용을 분담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철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미국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결국 미국의 전략은 ‘안보 부담은 줄이고, 경제적 이익은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중간선거 이후로도 이러한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정부의 외교전략에 의문을 만든다. 정부는 미국과 접촉할 때마다 “한미동맹을 강화했다”고 자평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안보위협을 억제했다는 논리다. 문제는 정부 설명과 달리 미국은 안보 부담을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미동맹이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했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이미 입법이 완료된 IRA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는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상·하원 개별 의원들을 사후 접촉 중이다. 포괄적 전략동맹의 정의가 무색한 상황이다.

대미외교에서 가시적인 이득이 보이지 않는 한국과 달리 미국을 상대로 이득을 취하는 국가들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속 인도와 터키는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러시아 원유 등으로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한국의 차이는 외교에 맹목적 정답을 두고 움직이느냐, 아니냐에 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전략이 ‘미국’이라는 점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나친 투명성이 한국 외교전략의 유연성을 제약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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