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돌봄 때문에 이사 왔는데.." 구청장 바뀌자 '직영 중단' 논란
학부모들 "이사 고민" "불쾌하고 기만당한 기분"
중구 "과다한 예산, 운영주체 적정성 고려한 것"
자치구가 직접 초등 돌봄교실과 국공립어린이집을 운영해 화제를 모았던 서울 중구가 직영 체제 중단을 검토 중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구형 초등 돌봄’은 안정적이고 질 높은 운영 체계로 이용자 99% 이상이 만족하는 지자체 우수 정책으로 손꼽혀 왔다. 학부모들은 새 구청장 취임 이후 벌어진 갑작스런 보육 정책 변화에 항의하며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중구 누리집, 국회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에 항의글을 올리는 한편 16일 중구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오는 26일엔 중구청 앞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16일 서울 중구와 학부모 등의 말을 종합하면, 중구는 초등 돌봄교실과 국공립어린이집, 방과후 학교의 자치구 직영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중구 시설관리공단이 운영 중인 국공립어린이집 17곳과 공립초 9곳 초등 돌봄교실과 방과후 학교, 학교 밖 키움센터 7곳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거나 교육청에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학부모, 학교, 교육청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단 검토 이유에 대해선 “시설관리공단보다는 교육 전문 기관이 어린이집과 초등 돌봄교실을 운영하는 게 적합하다”며 “특히 초등 돌봄교실은 과다한 예산이 소요되는데 서울시교육청에서 내년 돌봄시간을 저녁 8시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점 등을 함께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중구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중구 초등돌봄교실 운영에 배정된 예산은 총 236억원이며, 그중 중구가 180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를 시비와 국비로 충당했다.
중구는 2019년 5월 ‘학교는 교육, 지자체는 돌봄’이라는 기조 아래 초등 돌봄교실을 순차 직영화했다. 관내 공립초등학교 9곳이 지난해 9월까지 모두 직영 체제(시설관리공단 위탁 운영)로 전환됐다. 학부모들 반응은 뜨거웠다. 통상 교육청·학교가 운영하는 초등 돌봄교실은 한 교실에 돌봄 교사 1명씩 배치되는데, 중구는 두 명으로 늘렸다. 학기 중과 방학 모두 저녁 8시까지 운영하고 간식과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돌봄 교사가 두 명인 덕에, 학교 앞 학원 차량까지 학생을 인솔하고, 저녁 8시까지는 학원을 마치고 다시 돌봄교실에 돌아와 머물 수 있게 했다. 중구가 지난해 말 학부모 72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625명) 중 99.4%가 초등돌봄 교실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중구형 초등 돌봄 사업은 2019년 행정안전부 주관 지자체 우수시책 경진대회 대통령상(최우수상)을 받았고, 지난해 12월 전국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 주관 ‘대한민국 좋은 정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중구는 올해 3월 공립초 9곳 방과후 학교도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통상 민간 위탁 운영하는 국공립집 어린이집도 중구는 직영체제로 전환했다. 2019년부터 순차 전환해 현재 총 23곳 중 17곳이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임 서양호 구청장은 지난 1월 “2023년까지 23개 전부를 직영화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중구 직영 국공립어린이집은 현장학습비, 특별활동비를 전액 지원하고, 회계 전담 교사와 당직 교사를 따로 둬, 보육 교사들이 보육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교사 노동환경과 처우도 기존 국공립어린이집보다 나아졌다고 평가받았다. 프로그램과 친환경 급식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학부모들은 중구의 초등돌봄교실·국공립어린이집 직영 중단 검토에 우려와 분노를 금치 못했다. 봉래초 2학년 자녀를 둔 권아무개(39)씨는 “작년 8월에 초등 돌봄이 잘 돼 있다고 해서 서대문구에서 중구로 이사왔다. 구에서 직영하는 우리동네 키움센터에 아이를 보내는데, 아이가 센터 가는 재미로 학교를 다닌다. 새 구청장이 취임사에선 보육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더니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김길성 구청장은 지난 7월 취임사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중구, 여성이 살기 좋은 중구를 만들겠다”며 “보육 수요변화에 학부모의 선호도를 고려하여 국공립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등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구의 한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자녀를 둔 장아무개(40)씨는 “중구에 워낙 학원이 없어서 아이 학교 입학할 때 다른 동네로 이사할 생각이었는데 초등 돌봄교실이 너무 잘 돼 있어서 마음을 바꿔 여기서 학교를 보낼 생각이었다”며 “초등 돌봄이 잘 되면 중학교, 고등학교도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청장이 바뀌고 한순간이 정책이 바뀌는 걸 보니 믿음이 사라졌다. 심각하게 이사를 고민중이다”라고 말했다.
흥인초에 다니는 1학년 자녀를 둔 김아무개(42)씨는 “초등 돌봄교실은 저녁 8시까지 아이를 봐줘서 직장 다니는 엄마들한테는 꼭 필요한 곳이다. 그런 정책을 이미 바꿀 계획을 세워놓고 이제서야 간담회를 한다고 하니 불쾌하고 기만당한 기분”이라며 “교육청으로 초등 돌봄교실을 이관하면 돌봄시간을 8시까지 연장하더라도 그동안 받아온 돌봄 서비스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선생님들이 겪는 고용 불안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될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중구 초등돌봄 교실에서 일하는 한 돌봄 교사는 “우리는 현재 공단 소속이지만 우리동네 키움센터 채용 기준에 적합하다고 평가받아서 뽑힌 전문 인력이다. 그동안 고용 불안 없이 편안하게 아이들을 돌봤는데 교육청에 이관되면 지금처럼 한 교실 당 교사 2명이 유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이미 고용불안과 경력·호봉 불인정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는 오는 29일부터 새달 28일까지 동주민센터 등에서 9개 공립초 학부모들과 ‘초등 돌봄과 방과후 학교’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덕수초 1학년 자녀를 둔 이아무개(42)씨는 “초등 돌봄교실 이용자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인데 평일 오전 10시에 동주민센터로 모이라고 하는 발상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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