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타격까지 시사한 '북 핵무력 정책 법령' 실효적 대응책 나올까..한·미간 협의도 본격화
북한이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핵 지휘 통제권을 국무위원장(김정은)으로 일원화하고 지도부가 공격 받을 징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선제 핵 공격도 가능하다는 논리의 '핵 무력 정책 법령'을 채택했습니다. 북한의 체제 보장을 담보하고 북핵 시설은 물론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한·미의 훈련계획 자체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유사시 한·미 군 당국의 군사적 대응 움직임을 북한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핵 사용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논리를 마련한 만큼, 북핵 국면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에따라 한·미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통해 대응책 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한국의 독자적인 대응 능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대두되고 있는데요, 그야말로 엄중한 상황인 만큼 실효적인 대응책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 '핵 선제 타격'까지 시사한 '핵 무력 정책법령' 채택
북한이 핵보유를 법제화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3년 3월 31일에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른바 '경제건설 및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하고 곧바로 4월 1일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해서 소위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한 적이 있습니다. 핵보유국을 명시하는 법령을 발표한 것이죠. 핵 보유국 지위 천명과 함께 전 세계적인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핵보유를 계속하겠다는 언급도 있었고요. 거기에 더해 비핵국가들에 대한 선제 핵 불사용 및 '위협하지 않겠다'는 '불위협'조항도 있었습니다.
■ 핵무기 사용 조건 상세히 규정…자의적 판단 여지 확대
그런데 이번 '핵 무력 정책법령' 사실상 2013년에 있었던 '불위협 조항'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비핵 국가들이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야합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이 나라들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밝힌 '핵무기 사용 조건'을 보면 매우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도 상당히 세분화 됐는데요, 이른바 핵 무력 법령 제6조에 다음과 같은 5가지 경우에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돼 있습니다.
■ '공격이 임박했다' 판단 때도 핵을 쓸 수 있다?
위에 언급된 핵 사용 조건을 보면, 북한이 핵으로 공격받았을 경우는 물론이고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핵을 쓸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가 그대로 반영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2013년 핵 관련 법령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13년 법령에서는 침략이나 공격을 당했을 경우에 최고사령관(김정은)의 판단에 따라 핵무기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됐었죠. 이렇게 볼 때 방어적 성격의 핵 사용 개념이 포함됐던 지난 2013년 법령의 내용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이번 발표로 2013년 법령은 자동으로 폐기됐습니다.
북한보다 핵무기 보유 수가 많은 중국은 핵 선제공격 논리나 주장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패권 경쟁상대이긴 하지만 미국과 핵무기 경쟁을 하기에는 아직 벅차기 때문에 핵무기를 통한 자위적 방어 무기임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최소억지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만큼 북한의 공개적인 핵무력 법령 발표가 의도하는 것은 다분히 정권과 체제 담보는 물론 최고 지휘부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한미 두 나라에 대한 압박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북한의 '핵 사용 위협' 가능성 높아져…한·미 군 당국 압박 커질 듯
그러나 이번에는 공격 임박 판단이나 작전상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까지 광범위하게 핵 사용 조건을 넓혔고 사실상 핵 선제공격의 논리까지 정당화한 만큼, 남북 군사대치 상황에서 재래식 무기전력에서는 북한이 절대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우발적인 군사충돌 시 북한이 '핵 사용 위협'을 할 가능성은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이 상시화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또 북한이 먼저 무력도발을 한 뒤 핵 위협을 통해서 한미의 군사적 대응을 자제시키고 억제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미 군 당국으로서는 북한의 핵 사용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어디까지 군사적 대응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무력 충돌과정에서 이른바 '비례적 대응'을 하더라도 북한이 핵 사용 위협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워싱턴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계기로 한미가 북한의 핵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한국에 전술 또는 전략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이 즉각 상응하는 무기로 보복할 것이라는 약속을 한미 고위급 확장억체협의체를 통해 문서화된 형태로 보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 "확장억제 및 3축 체제 강화와 별개로 한국의 독자적 대응 능력 키워야" 목소리도
이와 함께 한국이 독자적인 북핵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이른바 '3축 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3축 체계란 유사시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대한 선제타격 역량을 의미하는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인 KAMD, 그리고 북한군 지휘부 타격까지를 포함하는 대량응징보복 KMPR을 의미하는데요, 북한이 선제 핵 타격 논리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과연 재래식 전력인 3축 체계가 효율적으로 기능할 것인가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3축 체계는 강화해 나가되, 이와 별도의 북핵 대응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많은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 당국이 그 어느 때보다 북핵 대응을 포함한 외교안보 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금철영 기자 (cyk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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