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단 버팀목 이상개 시인 별세

조봉권 기자 2022. 9. 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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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단의 버팀목 송재 이상개 시인이 16일 오전 별세했다.

"이상개라는 이름은 부산에서 시를 쓰는 특정 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한편으로 필자는 그 이름에 덩달아 따라오는 보통명사의 뒤척임을 열거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나루, 모자, 중앙동, 소주, 침북, 안부, 하늘을 쳐다보는 그윽한 눈빛, 낮고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천천한 걸음걸이 등을 말이다. 부산 시단을 무던히도 지키면서, 그리고 동광동 소재의 주점 '강나루'를 말없이 지키면서 문단의 버팀목이자 언제라도 찾아가 술을 나누어도 불편하지 않은 분이다." 이상개 시인의 삶과 문학을 참으로 알맞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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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깊은 시 세계와 평온한 인품으로 시단 이끌어

부산 시단의 버팀목 송재 이상개 시인이 16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1세.

이상개 시인. 국제신문 DB

이상개 시인. 국제신문 DB
고인은 194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2020년 말 고인이 펴낸 마지막 시집 ‘산 너머 산’(빛남출판사)에서 고인은 자신의 인생 행로를 이렇게 밝혔다. “1941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폭격을 피해 와카야마 산골짝으로 피란했다가 광복이 되자 고향인 경남 창원 봉림으로 귀국하여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64년 ‘잉여촌’ 창간 동인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 모임이 펴낸 ‘잉여촌’은 이상개 유자효 오하룡 김용길 장승제 김성춘 박종해 조남훈 시인이 참여한 ‘국내 최장수동인지’(2018년 제33호 발행)로 꼽힌다.

1965년 ‘시문학’ 2회 추천을 받으며 시인의 길로 더욱 확실히 들어선 그는 1972년 ‘시법’ 동인 활동을 시작했고, 1988년부터는 ‘시와 자유’ 동인이 됐다. ‘시와 자유’는 결성 이후 오랜 세월 부산 시단을 이끌며 시단을 풍성하게 가꾸었다.

1985년 5월 7일 부산 중구 동광동 화국반점에서 5·7문학협의회가 출범했다. 부산 문단의 거목 요산 김정한 선생이 주도한 5·7문학협의회는 당시의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올곧게 문학정신을 펼쳐가고자 애쓴 단체로, 부산작가회의의 전신이다. 출범 당시 5·7문학협의회에는 이상개 윤정규 오정환 조갑상 김문홍 류명선 구모룡 최영철 등의 문학인이 참여했다.

이상개 시인은 ’영원한 평행(1970) ’만남을 위하여’(1985) ’흐르는 마음 하나’(1989) ’김씨의 허리띠’(1999) ‘파도 꽃잎’(2006) ‘강나루 하나’(2013) 등 시집 14권을 냈다. 2001년에는 시선집 ‘소금을 뿌리며’를 도서출판 해성에서 펴냈다.

빛남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부산 문단의 어려운 일, 궂은일을 많이 떠맡았고 의견 대립이 생기면 묵묵히 조정하는 일을 도맡았던 그는 부드럽고 평온한 인품으로 두루 신망을 얻었다. 정훈 문학평론가가 시집 ‘산 너머 산’에 쓴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상개라는 이름은 부산에서 시를 쓰는 특정 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한편으로 필자는 그 이름에 덩달아 따라오는 보통명사의 뒤척임을 열거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나루, 모자, 중앙동, 소주, 침북, 안부, 하늘을 쳐다보는 그윽한 눈빛, 낮고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천천한 걸음걸이 등을 말이다. 부산 시단을 무던히도 지키면서, 그리고 동광동 소재의 주점 ‘강나루’를 말없이 지키면서 문단의 버팀목이자 언제라도 찾아가 술을 나누어도 불편하지 않은 분이다.” 이상개 시인의 삶과 문학을 참으로 알맞게 표현했다.

‘강나루’는 이상개 시인과 목경희 여사 부부가 운영해온 소탈한 주점이다. 이상개-목경희 부부는 누구라도 언제든 편한 마음으로 들러 쉬며 마음을 달래고 갈 수 있도록 강나루를 운영했다. 강나루는 부산 문인과 예술인의 소박한 아지트 구실을 해왔다.

고인은 부산 시단 ‘우유부단파의 두목’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했다. 목소리 한 번 높이는 일 없고 남에게 압박감이나 힘겨움을 주는 일이 없으면서도 어느새 복잡한 현안이 해결되도록 주선하고 이끄는 그의 면모를 시인들은 ‘우유부단파’로 표현했다. 이상개 시인 말고도 ‘우유부단파’로 분류되는 시인이 더 있었는데, 고인이 좌장이자 어른 역할을 언제나 맡았으므로 ‘우유부단파의 두목’이 됐다. 그가 타계하면서 부산 예술계에서는 기댈 수 있는 어른을 또 한 명 보내게 됐다.

‘산 너머 산’에 실린 그의 시 ‘강나루 1-가는 정 오는 정’ 전문을 소개한다.

 왔다가 가는 정이 고운 줄만 알았더니

 갔다가 오는 정도 애틋하고 살갑더이다

 비끼는 노을 속에 반짝거리는 새 소리

 강나루, 만남과 헤어짐도 있고 없는 듯

빈소 부산 중구 동광동 메리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9월 18일 오전 9시. 장지 부산추모공원. 유족으로 아내 목경희 여사와 자녀 이시원 이빛남, 사위 조선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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