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여행 보내주려 그림 그려요"..그렇게 아버지는 붓을 들었다

이한나 2022. 9. 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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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동 화백 개인전
'가을동화' 작가로 유명세
어른 위한 동화 풍경 그려
이수동 화백의 작품 `Father` (2021) [사진 제공 = 노화랑]
그냥 풍경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설원의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서 작은 오두막이 살짝 보인다. 그곳을 찾아가는 듯한 여인의 뒷모습도 포착된다. 동화 같은 환상의 세상을 그리는 이수동 화백(63)의 작품 '그녀가 온다'(2020)이다. 인사동 노화랑에서 30일까지 펼쳐지는 그의 개인전에서 유독 눈길을 끈다.

"가족들을 여행을 보내주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는 작가는 아내와 딸이 유럽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풍경 묘사를 듣고 상상력을 보태 약 두 달 만에 이 대형 그림을 완성했다. 전업작가의 길을 지지해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담았다. 플랑드르 대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1565)의 원경도 떠올리게 할 만큼 섬세한 붓질로 완성한 초록 침엽수가 인상적이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은 'Father'(2021)에서도 보인다.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세상에서 아내와 딸을 위해 앞장서서 나아가며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아버지가 있다. 'I am Your First Class'(2022)도 구름 위 푹신한 의자가 제목과 함께 위트 있게 완성됐다.

약 3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2년 전 좋아하던 술을 끊고 정신이 맑아져 그림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아크릴 물감을 앞서 사용한 1세대 화가로 세밀한 붓질로 아주 작은 인물을 표현해내는 것이 절묘하다.

그는 영남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주류가 아닌 구상화를 하면서 오랫동안 무명이었다. 그의 재능을 발굴해 상경하게 만든 이가 노승진 노화랑 대표다. 1992년 신진 작가 기획초대전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대표적 중견 작가로 성장한 그가 노화랑과의 30년 인연을 기념해 개인전을 연 것이다. 2000년에 한류 열풍의 원조가 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화가인 주인공(송승헌)이 그린 그림으로 그의 작품이 등장하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풍경화 속 조연처럼 작게 등장하던 인물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단심(丹心)'(2020)은 분위기가 색다르다. 인물화에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껴온 작가가 이번에 대중에게 선보였다고 한다.

이수동 작가는 주로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에 대한 기원을 화폭에 담는다. 그래서인지 남녀가 함께 있는 그림은 결혼 선물로, '어사화' 그림은 입시생 자녀를 둔 지인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 메모광인 그는 평소 의미 있는 문장을 기억해둬 그림 소재나 제목에 쓰거나 어른들을 위한 그림 동화를 내기도 했다. 임창섭 평론가는 "(이번 개인전 작품들은) 빠르게 나의 가슴에 날아와 찌르는 감정이 아니라 천천히 다가오는 감성의 세계를 담아냈다"고 평했다. 노승진 대표는 "30년 전 맑은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림에 정진해온 작가의 작품을 다시 선보여 기쁘다"고 밝혔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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