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땅에 제발 아무 짓도 하지마라"..대농장 지주의 제언
때는 1987년, 조모에게 '넵 캐슬'이라 불리는 사유지를 물려받은 영국인 찰리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그의 아내가 이 책의 저자다). 대농장 규모는 3500에이커. 환산하면 14㎢를 넘는 큰 규모였다. 부부의 생업은 농사와 낙농업. 부부는 땅을 갈고 제초제를 뿌리고 써레질을 하면서 작물을 길렀고, 소를 키워 우유를 생산했다. 하지만 농사가 흑자였던 건 10여 년간 두 해뿐이었고 우유 가격 변동으로 자금난에 시달렸다. 몸을 갈아 넣어도 버티기 힘든 손실에 대출금까지 부부를 옥죄곤 했다. 넵 캐슬의 주인은 다가오는 자신의 운명을 실감했다. 이대로라면 파산이었다.
1999년 한 현인이 방문한 이후 두 사람은 넵 캐슬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완전히 뒤엎는다. '넵 캐슬을 야생 그대로 두자.' 농사를 신처럼 떠받들던 이들에게 생소했던 넵 캐슬의 '재야생화(rewilding)'였다. 잡초를 그대로 두기. 엉겅퀴, 소리쟁이, 금방망이 같은 풀이 자라도 뽑지 않기. 땅을 이용한 생산성 확보란 당위적인 목표가 대농장의 오랜 역사에서 지워졌다. 이후 실험은 20년간 지속됐다. 이 책은 그의 관찰일지에 가깝다. 런던대에서 고전학을 공부한 저자는 넵 캐슬의 황무지를 관리하는 환경보호론자가 됐다.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을 하며 '재야생화'를 알리는 중이다. 땅은 어떻게 됐을까.
영국 멸종 적색목록에 오른 보존 최우선 순위의 조류가 넵 캐슬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조류 11종, 박쥐 4종이었다. 구경조차 힘들었던 새 나방 종이 흘러 들어오면서 현재 나방 276종이 넵 캐슬에 서식한다. 현관문을 열면 넓적한 뿔을 가진 40마리 이상의 다마사슴 무리가 우적우적 풀을 씹고, 오래전 셰익스피어와 밀턴이 도취됐지만 20세기 후반 50년간 영국에서 91%가 사라진 새 나이팅게일이 넵 캐슬에서 영롱한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쇠똥구리에 관한 저자의 관찰과 묘사는 특히 흥미롭다. 말과 가축에게 복용시키던 구충제 아버멕틴을 주지 않자 소똥과 말똥엔 쇠똥구리가 판 구멍이 격자무늬를 이룰 정도였다. 쇠똥구리가 누구인가. 저 녀석들은 3000만년 동안 지구에서 살아왔다. 쇠똥구리들은 자신의 고향을 찾은 듯이 몸무게의 50배에 달하는 소똥을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굴렸다.
'세계 전체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골몰하는 인간에게 이 책은 '세계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나타나야 마땅한가'란 질문을 던진다. 이제 다음 질문은 필연적이다. 첫째, 땅을 자연에 돌려줌으로써 인간이 얻게 되는 효용은 무엇인가. 둘째, 땅의 재야생화를 통해 망실된 농업 생산성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가. 밥의 무게 앞에서 자연 보존을 외치는 도덕적인 목소리는 허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답은 이렇다. '농업'과 '자연'은 그간 대립하는 가치로 이해됐지만 그렇지 않다고. 재야생화는 토지 황폐화를 중단시키고 수자원을 확보하며 작물에 수분을 넣어줄 곤충을 공급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량 생산에 필수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재야생화의 중요한 잠재적 성공 분야는 농촌관광이다. 100년 동안 인간의 생존은 주변 종을 파악하고, 공감하고, 협력하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린 세계를 부유한다. 이제 땅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책은 곳곳에서 사유를 추동한다. 땅은 재배되고 경작돼야 하는 공간인가, 나무와 식물이 빼곡한 숲을 이뤄야 하는 곳인가. 또 자연의 원형은 울창하게 우거진 삼림인가, 동물이 지나간 황폐한 들판인가. 열매를 맺지 않는 비생산적인 작은 관목은 인간에게 불필요한 식물인가. 기아와 식량 부족과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때에 농사를 짓지 말자고 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모든 땅에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인위적으로 가꿔온 자연과 원형 그대로의 자연 가운데 우리가 어느 길을 걸어가야 할지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선정한 10대 과학서로 꼽힌 이 책은 리처드 제프리스 도서상, 영국 왕립지리학회 네스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선데이타임스, 옵서버 등에 기고된 저자의 글은 최고의 논픽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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