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 전공 버리고 조종사 된 이 남자, 이유 물어보니

문광민 2022. 9. 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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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하늘 위에서 자유를 찾은 임창훈 제주항공 부기장
임창훈 제주항공 부기장이 `보잉 737-8` 기종의 모의 비행훈련 장치에 앉아 스위치를 조작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진로를 틀어 조종사가 된 임 부기장은 "비행 중 노을이 지는 하늘을 만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형기 기자]
끊기다시피 했던 하늘길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감염 통제를 위해 굳게 닫혔던 각 나라 국경이 다시 열렸고, 출입국 시 엄격하게 시행되던 방역 규제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완화됐다. 월별로 비교했을 때 올해 1월 국내 항공사들의 국제선 운항 편수는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7%에 그쳤지만, 지난 8월에는 이 비율이 26%로 높아졌다.
국제선 운항이 늘어나자 조종사들도 분주해지고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해 목적지에 착륙하는 순간까지 조종사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비행기를 순항고도에 올려놓은 뒤에도 무수한 체크리스트를 반복 점검한다. 비행을 마친 뒤 숙소에 들어가 그날의 비행을 복기하며 다음 비행을 준비한다. 주기적으로 항공기 조종실을 그대로 복사해놓은 듯한 시뮬레이터에서는 온갖 비상 상황과 악조건에 대처하는 훈련도 받는다.

임창훈 제주항공 부기장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조종사다. 법조인이라는 정해진 길을 가기보다는 하늘 위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대학 졸업 후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진로를 틀었다. 올해로 5년 차가 된 임 부기장에게 법학과 조종 간 접점은 무엇인지, 비행기 맨 앞자리 콕핏(cockpit·조종석)을 지키는 조종사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비행은 무엇인지 물었다.

―파일럿이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이다 보니 '진로를 너무 확 트는 건 아니냐. 기존에 공부했던 걸 살리는 게 좋지 않겠냐'는 반응이 있었다. 사실 파일럿의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으니 다들 뭐라고 못했다.

―법학이 싫었나.

▷법학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법조인의 삶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법조인이었다. 20년간 공직에 있다가 제가 대학교 1학년에 재학하던 때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개인 생활이 없었다. 가족과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도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아버지는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롤모델이지만 법조인 생활엔 회의감이 들었다.

―법조인이 됐다면 어떻게 지냈을 것 같나.

▷상상이 안 된다. 법학을 공부할수록, 법조인의 삶을 떠올릴수록 법조인이 되겠다는 동기부여가 안 됐다. 조종사가 되기 전까지도 계속 그 생각을 했다.

―법조인이 된 대학 동기를 보며 부러웠던 적은.

▷딱히 없다. 동기 중 90% 이상이 현재 법조인이다. 열심히 바쁘게들 지낸다. 자기 시간이 없다.

―대학 동기들이 본인을 부러워하는 때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주어진 일을 제한된 시간에 얼마나 정확히 처리할 수 있는지가 서비스적으로 중요한 차별점이 된다. 클라이언트가 언제 일을 맡기더라도 빨리 해내는 게 중요하다.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 주말에도 웬만하면 일하고, 기본이 새벽 1시 퇴근이다. 조종사라는 직업은 휴식 보장이 확실하다. 비행을 가면 휴양지·관광지로 간다.

―조종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일상이 다채롭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과 매일 비슷한 업무를 한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반면에 조종사는 다른 조종사·객실승무원과 한 팀이 돼 매번 다른 목적지로 향한다. 같은 노선을 운항하더라도 비행은 똑같이 이뤄지는 법이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은 주로 여행객들이다. 공항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승객들로 북적인다. 활기 넘치는 공간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일할 수 있다는 건 조종사라는 직업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다.

―법학과 조종 간 접점이 있다면.

▷법학과 조종은 비슷한 면이 있다. 법학은 법학자의 의사 결정에 관한 학문이다. 법 공부는 판례를 계속 습득하고 체화하면서 이상적인 법학적 사고와 자신의 사고를 동기화하는 과정이다. 조종도 마찬가지다. 비상 상황에선 어느 공항으로 갈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판단해야 한다. 계속 훈련하며 조종사는 이상적인 조종사의 의사 결정 과정을 체화한다.

―파일럿 교육은 어디서 받았나.

▷2016년 4월부터 1년2개월가량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길레스피 공항 인근의 비행학교에서 교육받았다. 파일럿 교육은 일정한 비행 시간을 채우는 게 관건이다. 샌디에이고는 날씨가 좋고 연간 강수량이 적어 1년 365일 중 340일을 비행할 수 있는 지역이다.

―비행학교에서 강조한 것은.

▷조종사는 의문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착륙 시 활주로에 접근하면서 이상한 게 있다면 복행(復行·go―around)해서 재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한 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맞추려 하다 보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종사는 빨리 착륙하고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때에도 조종사는 흔들리지 않고 무언가 이상하다 싶으면 재접근해서 착륙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종사의 일과를 소개해 달라.

▷근무일에는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날씨를 확인한다. 그리고 공항 특이 사항에 관한 항공고시보(NOTAM·Notice to Airmen)를 확인한다. 이후 회사 라운지로 출근한다. 비행을 마치고 나서는 그날의 비행을 복기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복기하는가.

▷최근에 인천~괌 왕복 비행을 다녀오고 복기한 내용이다. 각 비행관제 구역을 지날 때마다 받았던 관제주파수를 기록했다. 또 괌에 착륙하기 직전에 공항 근처에 비구름이 강하게 발달해 있으니 관제기관으로부터 어떤 비행 경로를 원하는지, 비구름을 뚫고 지날 때 비행 상황이 어땠는지에 대한 답변을 요청받았다. 목적지 공항에 착륙한 뒤 받았던 지상 이동 경로 지시를 복기했다. 그 밖에 비행 중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정리했다.

―순항고도에 올라선 뒤 조종사는 무엇을 하나.

▷순항고도에 도달한 이후의 확인 사항들을 먼저 점검한다. 일반적으로 기장석과 부기장석의 고도계와 예비 고도계의 지시고도를 서로 비교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엔진·시스템 계기 창을 띄워 각 지시값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이후 연료펌프의 작동 상황, 제빙(除氷)·방빙(防氷) 장치 작동 상태, 승객 벨트 사인, 기내 여압 상태, 기내 온도 유지, 비행 정보 송신장비 작동 여부 등을 점검한다. 이런 확인 사항들을 정기적으로 반복 점검하면서 항로의 중간 지점들에 도달할 때마다 예상 시각에 제대로 도착했는지, 연료 소모량은 정상적인지 등을 확인한다.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가 끊임없이 있다.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조종석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악천후에 착륙하면서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순간이 있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때는 위험 요인이 증가한다. 활주로에 접근할수록 긴장감이 커진다. 딱 착륙했을 때 성취감과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날에는 안전을 위해 부기장이 아닌 기장이 직접 착륙하는데 옆에서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비행 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노을이 지는 하늘이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그 장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구름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아름답다. 일상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을 조종사는 일상처럼 본다.

―조종사들이 목표로 하는 완벽한 비행이란.

▷이론상 완벽한 비행은 있지만, 실수 없는 완벽한 비행을 추구하는 조종사는 없다. 인간은 어느 정도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생물이다. 현대 항공안전학의 목표는 실수를 인정하되, 발생 가능한 실수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실수조차 감당할 수 있는 위험 범위 내에 두는 것이다. 실수 없는 완벽한 비행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목표 설정이다. 조종사의 목표는 자신의 역량을 키워서 감당 가능한 오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완벽한 착륙이란.

▷항공기가 활주로 내 목표 지점에 내리도록, 바퀴가 닿아야 할 지점에 닿도록 하는 착륙이다. 부드럽게 착륙하려고 하다 보면 목표 지점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비가 내리고 활주로가 미끄러운 상황이라면 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다.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는 게 착륙의 핵심이다.

―조종석에는 얼마나 많은 버튼이 있나.

▷보잉 737-800의 경우 조종석 내 버튼이 500개가 넘는다. 머리 위에만 버튼이 100개 이상 있다. 이걸 다 쓰는가 싶겠지만, 다 쓴다. 버튼은 많지만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치돼 있다.

―직업적인 습관이 있다면.

▷절차대로 일하는 게 익숙하다 보니 반복적인 업무를 할 때 순서를 정하게 된다. 그래야 편하다. 세탁물을 정리할 때도 상의·하의·양말을 순서대로 한다. 날씨를 볼 때는 일반적인 예보 대신 더 정확하고 자세한 항공예보를 확인한다.

―정해진 길을 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두려워 말고 도전하되, 철저하게 준비한 뒤 도전하시라.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계획도 꼭 세우길. 저는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한 뒤 나름대로 항공업계에 대해 많이 알아봤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많았다. 도전에 따른 위험과 기회비용, 실패했을 때의 막막함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면 과연 도전할 수 있었을지 쉽게 말할 수 없다.

―올해로 입사 5년 차다. 그동안 조종사로서 향상된 역량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 여러 차례 같이 비행한 기장의 이야기로는 모니터링·상황 판단 능력이 입사 초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전만큼 비행을 많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5년 차 조종사에 걸맞은 역량이라기엔 스스로 부족함을 느낀다. 수많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조종사로서의 관록이 아무래도 부족하다. 앞으로 더 갈고닦아야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기장 승급까지 많은 과정이 남았다. 이후의 목표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장기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목표와 성취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각각의 단계에서 제게 주어지는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게 목표다.

▶▶ 임창훈 부기장은…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법 공부가 싫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사건 처리에 매달리는 법조인의 삶은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14년 하늘 위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민간항공사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했다. 2016년 4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소재 비행학교에서 1년2개월간 교육받았다. 2018년 8월 제주항공에 입사해 현재 부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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