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표 '메이드 인 아메리카' 폭주.. 곤혹스러운 한국[뉴스분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행보가 거침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한 달 동안 미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바이오 분야에서 ‘미국 내 생산’을 기치로 한 입법·행정 조치를 내놨다. 15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의 경제·기술적 주도권 수호’를 위해 국가안보 관점에서 외국인의 미국내 투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연일 ‘미국 우선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일련의 정책들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미산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조항에 따른 한국 등 동맹국의 피해도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 후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적극 동참했던 한국은 이제 전방위적으로 파고드는 ‘미국발’ 보호무역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서명한 반도체·과학법(8월9일), IRA(8월16일), 생명공학·바이오 제조 관련 행정명령(9월12일)은 모두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미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연구시설에 520억 달러(약 68조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법은 미국 정부 지원을 받으면 중국 등에 대한 투자를 하지 못하게끔 못박았다. IRA는 올해부터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7500달러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내년부터는 중국산이 대부분인 배터리 광물·부품의 일정 비율을 미국산으로 채우지 않으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백악관은 전날 열린 생명공학·바이오 제조 회의에서 미국 내 바이오 산업 생산을 위해 2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 등 전략적 경쟁자들’을 겨냥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외국인의 미국내 투자에 대한 행정명령 역시 역시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 자본의 투자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특정 나라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고 했지만, 행정명령은 외국 기업의 미국 인수가 국가안보, 공급망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평가해야 할 영역으로 초소형 전자공학(ME),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분야를 명시했다.
이 같은 흐름은 중국 대응을 최우선 지정학 과제로 설정한 바이든 정부가 출범 직후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산업 공급망 재검토에 착수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하지만 주요 생산시설의 미국 이전을 독려하는 것을 넘어서 IRA 사례처럼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위배되는 차별적 조치도 불사하면서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논의에 적극 협력한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동맹과도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바이든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정책이 과연 제조업 부활로 이어질지를 의문시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3일 ‘미국의 중국식 산업 정책의 구멍’이라는 글에서 IRA의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예로 들며 “세계 전기차 배터리 업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고, 부주의하게도 미국 전기차 판매량 2위 현대와 기아의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정부의 보호주의가 노골화하면서 한국의 처지도 곤혹스러워지고 있다. IRA의 한국차 차별 문제는 정부의 대미 설득전에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 지원 수혜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에 반도체 투자를 금지하는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은 한국 기업들에 사실상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이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해온 바이오 산업에서도 미국이 공격적인 생산시설 자국 이전(리쇼어링)을 추진할 경우 파장이 불가피하다. 한·미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해외 투자심사 관련 협력을 제고하기로 한 만큼 미국이 한국에도 중국 투자 심사시 이번 외국인 투자 관련 행정명령과 유사한 수준으로 엄격하게 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규범 제정이나 공급망 재편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중국과의 경제협력도 지속적으로 활성화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메이드 인 아메리카’ 파고가 거세지면서 한국의 외교·통상 역량이 총체적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대미 외교에 정통한 소식통은 “반도체, 생명공학 등의 생산시설을 미국 내에 두려는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대미 투자 확대를 넘어서 국내 첨단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장기적 관점의 전략을 마련할 때”라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09160744001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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