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역무원 희생될 때까지 '강 건너 불구경'..신당역 사건, 국가가 죽였다
전 씨는 지난 2019년부터 3년 동안 피해자에게 350여 차례에 걸쳐 만나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전씨는 A씨가 만나주지 않자 불법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했다.
A씨가 경찰에 전씨를 신고했고 경찰은 지난해 10월9일 카메라등이용촬영, 촬영물등이용협박 등 성폭력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당시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A씨가 신고를 하면서 스토킹이 멈추는 듯했지만 전씨는 2021년 11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합의를 종용하며 또 다시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연락을 시도했다.
결국 피해자는 경찰에 다시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경찰은 두번째 고소 당시에는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은 청구사유(필요성)가 있으면 하는 수사절차의 하나"라며 "불구속이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수사상 필요시 구속 영장을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경찰 수사 단계에서의 구속 영장 신청 비율부터 낮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방지법이 실행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신고된 범죄 건수는 2만4109건에 달한다. 이 중 검거 건수는 7064건이다.
그 중 경찰이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구속영장을 신청한 스토킹 범죄자 수는 253명으로 전체 7083명의 3.5% 정도다. 이 3.5%에 해당한 253명마저도 모두 구속된 것은 아니다. 전씨의 경우가 그렇다. 경찰은 첫 번째 신고 당시 수사 중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전씨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의 경찰의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미흡한 조치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경찰은 전씨의 첫 고소 직후 피해자를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등록하는 등 안전조치를 한 달간 실시했다. 한 달간 안전조치가 끝나면서 잠정조치나 스마트워치 지급, 연계 순찰 등 다른 조치는 피해자가 원치 않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안전조치 기간 중 특이사항이 없었고 피해자가 연장을 원치 않아 1개월 후 종료했다"며 "안전조치 종료 시점에도 위험성이 계속 있으면 재심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스토킹처벌법에 반의사불벌 조항을 빼야한다고 지적한다. 가해자가 합의를 빌미로 피해자에게 접근을 시도할 수 있고 이로 인해 2차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회에는 13건의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공사 측은 폐기 계획을 발표할 당시 "가스총 사용 빈도가 극히 낮고, 폭행으로부터의 직원 보호라는 기대 효과도 미미해 불필요한 행정 및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며 "직원 보호를 위해 위급 상황 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호신용 장비(전자식 호루라기)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역무원들은 전자식 호루라기로는 이런 응급 상황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30대 여성 역무원 B씨는 "칼을 든 사람을 호루라기로 어떻게 제압하냐"며 "역무원들 안전보다 예산 아끼는데 급급했던 공사의 결정이 문제다"고 말했다.
직위에서 해제된 가해자가 내부망을 이용해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했다는 것도 논란이 됐다. 사내 성비위 피해자인 20대 여성 역무원의 정보가 그대로 가해자에게 노출됐다는 것이다.
경찰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수사를 시작하자 전씨는 지난해 10월 13일 직장에서 직위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전씨는 직위해제 뒤에도 회사 내부망 접속 권한을 갖고 있었다. 전씨는 회사 내부망을 통해 올해 1월 변경된 피해자의 근무지를 파악했다.
서울교통공사 내부 사업소별로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아이디어를 제출해달라'는 공문이 내려온 것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과 10번 출구 앞에는 숨진 A씨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추모 벽면에는 A씨를 추모하는 내용의 쪽지가 수십장 붙어있었다.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후배님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성이 안전한 세상.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등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옆에 설치된 책상에는 국화꽃과 안개꽃 다발 60여개도 놓여 있었다.
분향소에 방문한 대학원생 김 모 씨(27)는 "화장실 입구에 '여성이 행복한 서울 여행(女幸) 화장실'이라고 붙어 있는데 여성이 죽어 나간 화장실이 과연 행복한 화장실이냐"라며 "가해자가 감옥에 갈 때까지는 과하다 싶은 정도로 피해자를 가까이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당역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는 유혜란씨(33)는 "이전에도 스토킹 신고를 했던 피해자가 살해당할 때까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던 게 안타깝다"며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고 해서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신당역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양모씨(57)는 "누가 또 앙심을 품으면 아무도 막지 못해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무서운 세상"이라며 "죽은 사람이 스토킹을 당하고 그 사람을 같은 회사에서 만났어야 했는데 얼마나 불안했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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