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와 작별 선언한 페더러, 누구나 인정하고 존경했던 '테니스 황제'

윤은용 기자 2022. 9. 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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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가 15일(현지시간)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은 2017년 호주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페더러. AP연합뉴스



남자 테니스의 위대한 전설 로저 페더러(41·스위스)가 마침내 은퇴를 선언했다. 페더러는 15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난 3년간 부상과 수술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내 몸의 한계를 난 잘 알고 있다”며 “테니스는 내가 꿈꿔왔던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나를 대해줬다. 이제는 경력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다음주 열리는 레이버컵이 남자프로테니스(ATP)에서 내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페더러는 지난해 7월 윔블던 이후 무릎 부상 등의 이유로 1년 넘게 공식 대회에 나오지 못하다가 다음주 레이버컵, 그리고 10월 ATP 투어 스위스 인도어 바젤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무릎 부상과 마흔을 넘긴 나이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레이버컵을 끝으로 정들었던 코트와 작별하기로 했다.

‘테니스 황제’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페더러는 2000년대부터 20년 넘게 남자 테니스의 정점에 군림한 선수였다. ‘테니스는 몰라도 페더러는 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같은 위상을 누렸다.

6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페더러가 1998년 프로 전향 후 써내려 온 역사는 경이롭다. 2003년 윔블던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18년 호주오픈까지 메이저대회에서만 20번을 우승했다. 자신과 남자 테니스 ‘빅3’를 이룬 라파엘 나달(22회·스페인), 노바크 조코비치(21회·세르비아)가 페더러를 넘어섰지만 20회 우승은 페더러가 최초로 달성했다. 여기에 윔블던(2003~2007), US오픈(2004~2008) 동반 5연패를 달성하며 역대 유일의 두 개 메이저대회에서 남자 단식 5연패를 달성한 선수로 남아있다. 윔블던(8회)과 US오픈(5회)은 최다 우승 기록도 갖고 있다. 이 밖에 237주 연속 남자 단식 랭킹 1위, 역대 최고령 남자 단식 랭킹 1위(36세10개월), 왕중왕전에 해당하는 ATP 파이널스 최다 우승(6회) 등 일일이 다 세기 어려울 정도의 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나달의 테니스가 야성, 조코비치의 테니스가 기계라는 이미지를 준다면 페더러의 테니스는 ‘우아함’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전성기 시절 페더러의 테니스는 완벽 그 자체였다. 서브, 발리 등 모든 플레이가 최상위권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테니스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특히 그의 상징이었던 한 손 백핸드는 도미니크 팀(오스트리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그리스)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줬다. “스페셜리스트들의 시대에서 당신은 클레이코트 스페셜리스트이거나, 잔디코트 스페셜리스트거나, 하드코드 스페셜리스트이거나, 아니면 로저 페더러일것이다”라는 지미 코너스의 말은 페더러의 테니스가 어떤 경지에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페더러도 역대 최고의 선수 논쟁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동시대에 활약한 나달과 조코비치를 완벽히 압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더러는 메이저대회 우승에서 이들에게 뒤쳐졌으며 심지어 상대 전적도 나달에 16승24패, 조코비치에 23승27패로 밀린다.

하지만 테니스계에 끼친 영향력을 따진다면 나달과 조코비치도 페더러를 능가할 수는 없다. 역대 모든 선수로 범위를 넓혀도 그렇다.

페더러는 ‘신사숙녀의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에 가장 걸맞는 이미지를 가진 선수였다. 데뷔 후 단 한 번도 추잡한 스캔들에 휘말린적이 없으며, 팬들에겐 늘 친절했다. 그래서 테니스 팬들이 가장 좋아한 선수였다. ATP가 선정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 연속으로 놓치지 않았다. 또 지난달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최근 1년간 테니스 선수 수입 순위에서도 17년 연속 1위를 지켰다. 심지어 무릎 부상 때문에 지난해 7월부터 1년 넘게 한 경기에 뛰지 못해 상금 액수가 0원이었음에도 무려 9000만달러(약 1257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력은 물론, 이미지까지 좋아 세계적인 기업들이 페더러를 후원한 덕분이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황제’의 은퇴에 많은 인사들이 앞다투어 작별 인사를 전했다. 페더러와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나달은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늘은 나 개인적으로는 물론 스포츠를 좋아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슬픈 날”이라며 “페더러와 코트 안팎에서 수많은 엄청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었다. 앞으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US오픈 우승으로 역대 최연소 남자 단식 랭킹 1위에 오른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역시 “어릴 때부터 내게 영감을 준 선수였다. 꼭 경기해보고 싶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US오픈을 끝으로 은퇴한 1981년생 동갑내기 세리나 윌리엄스(미국)도 “당신은 테니스를 완벽하게 평정했다. 항상 당신을 존경해왔다”고 작별의 인사를 남겼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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